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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임시정부100주년] <18> 대중매체 역사 살펴보기…③영화 '밀정'

영화 밀정 포스터. /배급사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디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의 마지막 장면.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의 역할을 맡은 정채산이 말했다. 조선독립 하나만을 위해 폭력을 앞세워 목숨바쳐서 싸운 의열단의 강인한 정신이 돋보이는 대사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송강호)이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파악하지만 속내를 감춘다. 이어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폭탄을 상하이에서 제조하고 경성(서울)까지 들여오는 의열단과 그들을 쫓는 일본경찰들 사이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쌍방간에 새어나가면서 누가 밀정인 지 알 수 없는 전개를 이어나간다.

영화 밀정은 일본경찰과 독립운동가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내용이 만들어졌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한 번 더 끌어모았다. 이정출의 실존인물은 황옥, 김우진은 김시현, 정채산은 김원봉이다. 영화의 모티브는 일명 '황옥경부폭탄사건'. 황옥 경부가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받아 경성으로 운반하다 붙잡힌 사건이다.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 /배급사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 독립운동가인가 친일파인가 '황옥'

이정출의 실제인물인 일본경찰 황옥 경부는 독립운동가를 돕고 의열단에 가입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경찰이 되고 경부까지 오른 인물이다. 때문에 그가 친일파인지, 독립운동가인지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황옥은 1923년 김시현, 김원봉과 중국 천진에서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이후 국내로 폭탄반입을 주도하고 김원봉으로부터 조선총독부 등 일제의 기관 파괴, 친일파 암살 등의 지령을 받지만 모든 계획은 실패했다.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황옥에 대한 평가가 여러갈래로 엇갈리게 된다. 의열단에 스파이로 접근해 조선총독부를 도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황옥이 김시현과 법정에서 의열단에 가입한 적이 없다는 거짓증언을 약속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후 황옥은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돕는데 적극 가담한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황옥과 실제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황옥은 여전히 논란 속에 있다.

의열단의 리더 김시현을 그려낸 역할 김우진. /배급사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왼쪽부터) 황옥과 김시현의 실제 모습.



◆ 의열단의 핵심 김시현 의사

의열단의 리더로 그려진 김시현 의사는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이다. 귀국 후 3·1운동 와중에 일본경찰에 체포, 본격적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했다. 이후 만주 길림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가입하게된다.

김원봉으로부터 폭탄과 무기를 조선으로 반입하다 일행 중에 밀정이 정보를 흘려 체포되고 황옥과 같이 10년형을 선고받지만 총 5년5개월을 복역했다.

영화에서 김시현 의사는 감옥에서 힘없이 누워 마지막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김시현 의사는 출옥 후에 또 다시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여러번 잡혀 투옥되고 석방되고를 반복한 그는 광복 이후에 귀국해 국회의원에도 당선됐다.

하지만 1952년 대통령 이승만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쳐 사형선고를 받아 또 다시 감옥에 들어서게 된다. 무기형으로 감형됐지만 5.16군사정변 이후에 정계에서 은퇴한다. 독립운동가로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김시현 의사에 대한 평가와 명예회복도 여전히 역사적 숙제로 남아있다.

약산 김원봉을 그려낸 인물 정채산. /배급사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김원봉은 독립운동 역사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힌다. 해방 이후 북쪽에서 공산주의를 택했다는 이유로 국사에서 활약상이 잘 부각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다른 독립운동단체와 마찬가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독립운동가다.

김원봉의 역할은 밀정보다 약 1년 전에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도 짧은 시간, 특별 출연으로 보여진 바 있다. 암살에서도 그랬 듯 밀정에서 또한 김원봉의 역할은 인물의 무게가 막중한 만큼 관객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무거우면서 의미가 깊었다.

김원봉은 1919년 만 21세의 나이로 의열단을 조직한 의열단장이다.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경찰서 등을 상대로 폭탄을 던지고 총격전을 벌이는 등 치열한 싸움을 지휘한 인물이다.

당시 일제 경찰은 김원봉의 현상금을 김구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제시했다. 그만큼 김원봉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최대 공격의 대상이었다. 일제가 건 김원봉의 현상금은 100만원. 현재 가치로 약 320억원에 달한다.

김원봉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 때 김구, 김규식과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그대로 잔류하며 월북인사가 됐다.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도 참여하는 등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겼지만 중국의 국민당 장개석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끌려갔고 그 이후에 자살했다는 설이 있지만 어떻게 죽었는 지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회의를 하고 있는 의열단 모습. /배급사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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