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25>달콤한 그 이름…인생와인 '샤또 디켐'

/안상미 기자



"빛을 마신다. 강렬한 고귀함이 넘쳐 흐른다. 디켐은 빛이다."(프랑스 작가 프레드릭 다드)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한창 포도가 익어야 할 여름엔 서늘했다. 8월에는 강수량이 100㎜ 밖에 되지 않았다. 성숙은 고르지 않았다. 이론적으론 와인으로 만들지 말았어야 할 해다. 그런데 결과는 기적처럼 가장 좋았던 빈티지 중 하나로 남았다. 오히려 다른 해보다 더 미묘한 다양성과 복합미가 새겨졌다.

기자의 인생 와인인 '샤또 디켐' 2007 빈티지 얘기다. 세계적인 스위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소테른(Sauternes)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단 맛이 별로 없고, 묵직한 레드와인을 좋아하는 것을 감안하면 의외다.

한창 포도가 익어가고 있는 8월 말 프랑스 소테른 샤또 디켐 와이너리와 포도밭 /안상미 기자



비만으로 놀림받던 어린 시절을 지나 혹독한 다이어트 시기를 거치면서 사실 단 맛이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입 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죄스럽기까지 했다. 십수 년간 무얼 먹는 자리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봉인을 해제해 준 게 바로 이 와인이다.

샤또 디켐 2007년 빈티지와 샤또 디켐 테이스팅룸 /안상미 기자



샤또 디켐 2007은 보드라운 솜사탕처럼 살살 녹았지만 과하지 않았고, 꿀처럼 달콤하면서 상큼했다. 소박하면서 빛났다. 여운은 영원히 끝날거 같지 않았지만 박하향 처럼 깔끔했다. 경험해보지 말아야 할, 맛봐서는 안될 와인은 없는 것처럼 모든 일에 미리 방어벽을 치지는 않겠다고 마음 먹게 만들었던 그런 와인이다. 어떤 일이든 이런 반짝반짝 빛나는 신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자리잡았다.

4세기에 달하는 샤또 디켐의 역사는 소설같다. 영국과 프랑스가 번갈아 소유했던 샤또 디켐은 지금은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가지고 있다.

샤또 디켐은 3대 귀부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쉽게 말하면 귀하게 썩었단 뜻이다. 다 익고서도 포도를 수확하지 않으면 껍질에 곰팡이가 낀다. 보트리티스 곰팡이다. 껍질에 구멍을 내고 약하게 만들면서 포도 수분은 날라가고 건포도같이 당분이 농축된다. 우와한 단 맛이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포도를 따지 않고 그냥 둔다고 다 되는게 아니다. 보트리티스 곰팡이가 잘 침투할 수 있도록 밤엔 기온이 내려가 이슬이 많고, 아침까지 안개가 껴야 한다. 낮엔 강한 햇빛이 습기를 날리고 포도를 말릴 수 있어야 한다. 딱 소테른이 그런 환경이다.

샤또 디켐은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주인공이 찾아야 하는 12병의 사도와인 중 마지막 12사도기도 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기만 해도 꽃밭이 펼쳐지는 만화적 허구를 한 꺼풀만 벗겨내고 보면 놀랍도록 그 와인을 잘 표현했다는 게 '신의 물방울'의 매력이다.

기자가 하루하고도 반 나절을 더 머물렀던 소테른은 '이끼 낀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니 태양이 쏟아지는 언덕이 나왔다. 그러나 언덕은 다시 안개에 덮이고…('신의 물방울 44권 中)' 있었다. 맛은 '색색의 과일과 꽃과 밀짚모자. 그리고 비단 천과 웃는 얼굴. 넘쳐나는 그것들은 한낮의 시장'처럼 빛났다.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평론가 칸자키 유타카는 샤또 디켐을 60년의 세월이 찰나의 꿈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 준 '영원이며, 그리고 순간인' 와인으로 꼽았다. 인생와인인 셈이다. 당신의 인생 와인은 무엇일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