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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가 만난 기업人]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 "국내 시장 좁아 日·싱가포르서 글로벌 공략"

최종수정 : 2019-04-01 13:18:28

국내 관련 시장 규모 최대 300억 고작, 일본 등에 법인 설립

리포팅 솔루션, 전자문서 개발 솔루션등으로 지속 성장 발판

박 대표, 최근 여성벤처協 회장에 선임돼 2년간 대외활동도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고객의 성공이 바로 회사의 성공이다. 회사 이름엔 이런 의미가 담겨있다."

'for client success(고객의 성공을 위해)'의 줄임말 FORCS라는 사명은 이렇게 탄생했다. 우리말로는 '포시에스'라고 읽는다.

박미경 대표(사진)는 "외국인들은 우리 회사 이름을 '포스'로 읽더라"라며 웃었다.

힘, 영향력 등의 뜻을 지닌 '포스(force)'도 나쁘진 않다. 포시에스에게는 그만큼 '보이지 않는 힘'도 느껴진다.

포시에스는 코스닥 상장사 중 남편이 끌고, 아내가 미는 대표적인 부부회사라 더욱 그럴 수도 있다. 박 대표보다 7살 연상인 남편 조종민 회장은 경영을 총괄하고, 아내 박 대표는 최고경영자(CEO)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겸하고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회사를 세우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박 대표가 프로그래밍을, 조 회장이 영업을 하며 안팎에서 역할을 나눠 맡기도 했다.

박 대표와 조 회장은 함께 다니던 IT회사에서 만나 결혼하고 회사를 설립한 창업 동지다. 그 때가 1995년이다.

당시 국내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외산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포시에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에 더해 리포트를 쉽게 만들어주는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매일 밤을 새면서 작업하니 6개월 만에 제품이 만들어지더라.(웃음)이름은 오즈의 마법사처럼 리포트를 쉽게 만들어준다고해서 '오즈(OZ)'로 지었다."

박 대표의 설명이다.

리포팅·전자문서 소프트웨어 대표기업 포시에스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 후 2년만에 IMF가 찾아왔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포시에스도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 있는 회사들이 빚쟁이에 시달리고, 무너지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박 대표는 "다른 회사들이 문닫는 것을 보면서 사업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빚을 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부터 부채 없이 회사를 꾸려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회상했다.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 김승호 기자
▲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김승호 기자

올해로 스무살이 훌쩍 넘은 포시에스가 지금까지 '금융부채 제로(0)'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해오고 있는 것은 사업 초기의 이같은 간접 경험이 큰 공부가 됐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기보단 어떤 일이 있어도 매출을 올려 임직원들을 먹여살려야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박 대표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것이다.

사업하면서 '죽음의 계곡(데스 밸리)'을 수 차례 마주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포시에스도 마찬가지였다.

"3개월 동안 월급을 주지 못한 때가 있었다. 정말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견뎌줬고, 결국 회사도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 후엔 단 한 차례도 월급이 밀리는 일이 없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박 대표가 힘들었던 때를 다시 추억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르네상스를 맞았다. 정부의 행정 전산망도 '전자정부'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힘을 보탰다.

IMF라는 큰 파도를 넘은 포시에스도 그동안 닦은 노하우로 관련 분야에 뛰어들었다. 대법원의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시스템, 국세청의 홈택스 등에도 포시에스의 노하우가 들어갔다. 지금도 전자정부 시스템의 절반 가량은 포시에스의 기술이 쓰인다. 2006년에는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난립하면서 외산제품만 취급하던 회사들이 또 다시 줄줄이 무너졌다. 다행히 매출의 절반 가량을 자사 제품으로 채운 포시에스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연구개발에 힘쓴 효과가 2009년부터 서서히 나타나더라. ERP(기업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제품 개발부터 영업망, 비용 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영업이익률도 20~30%까지 올라갔다"고 전했다.

포시에스는 2010년 처음으로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회사를 세운 후 꼭 15년 만의 일이었다.

관련 제품도 꾸준히 진화해 지금은 엔터프라이즈 리포팅 솔루션인 OZ 리포트와 전자문서 개발 솔루션 OZ e-폼, 클라우드 기반의 전자문서 서비스 e폼사인 등을 통해 안정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6월 결산법인인 포시에스는 2017년 당시 128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6월 기준)엔 180억원까지 늘었다. 이후 반기 매출이 114억원을 찍으면서 오는 6월까지의 결산 매출이 작년 실적을 갈아치울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한국시장에서 추가 성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내다볼 곳은 글로벌 시장이더라. 그래서 일본과 싱가포르에 지사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현지와 주변국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박 대표의 포부다.

한국에서 최대한 매출을 올려봐야 200억~300억원 시장이어서 목전에 바짝 다가선 포시에스가 앞으로 쳐다봐야할 곳은 나라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자 목표다. 포스에스가 현재까지 해외에서 거둔 실적이 미미하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하다.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가 서울 논현동에 있는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 박미경 포시에스 대표가 서울 논현동에 있는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내성적일 수 밖에 없는 박 대표는 최근 일을 저질렀다. 한국여성벤처협회장으로 2년간의 임기를 본격 시작한 것이다.

"여성기업인들은 성장에 대한 열망이나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이는 '기업가정신' 측면에서 보면 마이너스다. 협회가 여성벤처들의 스케일업과 여성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적극 지원해 이같은 단점을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박 대표는 여벤협에서 수석부회장을 4년간 하면서도 회장직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 기업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회장직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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