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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북한/한반도

[임시정부 100주년] '일제강점' 대항과 '이념대립'의 시작…국호 '대한민국'

고종 황제, 국호 대한은 삼한의 통합…자주독립국가 건설 의지

1919년 10월 임시의정원 첫 회의서 국호 '대한'으로 좌우 갈등



나라 이름 '대한민국'의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 왜 남한은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을, 북한은 북조선인민민주공화국이란 국호를 쓸까.

한 나라의 국호(國號)는 역사적 정통성과 국가의 정체성을 담는다. 단순한 이름을 넘어 국가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강화한다. 또 국가의 이념·사상·체제 등을 담아 자주성과 정치적 의무를 표현한다.

대한민국의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 역시 우여곡절의 한반도 역사를 담은 응집체이자 지향하는 바를 나타낸다.

◆삼한 대통합…'대한(大韓)'

먼저 '대한(大韓)'은 고대 삼한(마한·진한·변한)의 민족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다. 상고시대부터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고유 명칭 '한(韓)'에 '대(大)'를 붙인 것이다. 국가 통합을 이루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

'대한'은 조선 후기 고종 황제 때 변경했다.

고종실록 36권을 보면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통합해 하나가 됐으니, 이름을 '대한'이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바꾼다. '황제가 다스리는 한민족의 국가'라는 뜻이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이유는 '조선'이라는 국호는 중국이 정해준 것이었기 때문에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일본제국에 대항해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는 의지 때문이다.

대한에서 '대(大)'는 단순히 대영제국이나 대일본제국 등에 쓰는 '크다'라는 뜻이 아닌 '삼한 전체의 통합' 또는 '아우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면서 민족 정기와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국호 '대한'을 다시 '조선'으로 바꾼다.

일제 탄압에 맞서 대한의 국호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독립정신과 배일정신의 표출이었다.

3·1 운동 당시에는 수많은 국민이 대낮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한이라는 국호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후 독립운동세력은 대한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활동한다.



◆백성이 주인인 나라…'민국(民國)'

'민국(民國)'은 일찍부터 추구해 온 신분차별 없는 백성이 주인인 나라, 자유롭고 평등한 국민국가를 표현한다.

대한·민국을 합한 대한민국은 '대통합된 한민족의 자유롭고 평등한 국민국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3·1운동, 임시정부를 거쳐 광복과 함께 국호로 정착했다.

당시 제헌국회가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한 궁극적 이유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 썼던 국호로서 일제의 대한말살책동에 대항한 항읠의식과 광복의 의미 ▲1919년 3·1운동의 결과로 성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애착과 민족사적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 ▲국민통합과 국가통합의 정치적 지향과 '대통합된 한민족의 국민국가' 건설의 의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념갈등의 시작…국호 '대한'

1919년 4월 10일 임시정부는 중국 상해에서 열린 첫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한다.

순탄하진 않았다. 임시의정원에 모인 임시정부 지도자 사이에서는 국호 '대한'을 두고 주장이 대립했다.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신석우(1894∼1953년)는 이날 열린 첫 의정원 회의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좌익 지도자였던 여운형(1886~1947년)은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라며 고종 황제의 대한을 언급하며 반대했다. 그는 "그 대한 때 우리는 망했다"며 "망한 나라, 일본에게 합병된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년층과 중장년층, 민족세력과 좌익세력의 의견차는 여기서 시작했다. 좌익계열이 국호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역사학자 임대식은 '일제시기, 해방후 나라이름에 반영된 좌우갈등: 우대한, 좌조선과 남대한, 북조선의 대립과 통일(1993년)'을 통해 민족주의자가 국호 대한을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신석우는 여운형 말에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야 한다"며 국호 대한을 다시 제안했고, 다수결에 따라 국호는 대한으로 채택했다.

◆'민국'은 중화민국을 표방한 것?

중국은 앞서 1912년 국호를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선포한다. 대한민국의 민국은 중화민국의 민국과 같다. 일부는 대한민국 국호가 중화민국을 모방했다고 본다.

민국을 중화민국에서 따왔다는 중화민국 모방설의 근거는 임시의정원 논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안을 지지자 일부가 "중국이 혁명 후 민국을 쓰고 있으니 대한민국이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국대 황태연 교수는 "중화민국이 국호를 정하기 전부터 대한민국이란 용어가 사용한 사례가 많다"며 "민국은 조선 영·정조 때부터 써 온 민족고유의 전통적 술어"라고 설명했다. '대한' 국호가 사대주의 청산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중국 국호를 모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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