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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계

"朴정부 오판에 기업 다 망가져…" 설 직전 부도맞은 한 개성공단기업人의 절규

[b]대화연료펌프 유동옥 회장 "버티다 기력 탕진돼" 토로[/b]

[b]수출 대금 수령 지연에 5억원 어음 못 막아 부도 처리[/b]

[b]매출 500억 중 80%가 해외,70여개국 수출 '강소기업'[/b]

[b]기업회생절차 신청, 법원 '타당성' 인정 '재기 파란불[/b]

유동옥 대화연료펌프 회장이 지난 12일 인천 송도 본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승호 기자



【송도(인천광역시)=김승호 기자】"1~2년이면 재가동이 될 줄 알고 어떻게든 고객들을 유지하기 위해 밑지면서까지 제품을 팔았는데 사태가 길어지다보니 기력이 탕진됐다. 세상의 뒷전으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더라."

개성공단이 2016년 2월 강제 폐쇄된 후 꼭 3년째가 된 가운데 버티고 버티던 기업 한 곳이 결국 부도가 났다.

전 세계 70여 개국에 자동차 및 산업용 오일펌프와 필터 등을 수출하며 한 때 매출이 500억원까지 달했던 강소기업인 대화연료펌프에게 닥친 일이다. 대화연료펌프는 계열사 8곳을 포함해 전체 매출 가운데 약 80%를 해외에서 벌어들인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13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대화연료펌프는 지난 1일 돌아온 5억원 정도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가 됐다. 이날은 닷새간의 설 연휴를 코 앞에 둔 때였다.

인천 송도에 있는 대화연료펌프 본사에서 지난 12일 만난 창업주 유동옥 회장은 "한반도신경제지도에서 주역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이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다 이 모양이 됐다"면서도 "36년 넘게 유지해 온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은 내 책임"이라며 자신 탓으로 돌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부도 직후 부동산 매각과 기업 회생을 추진하던 대화연료펌프는 기자가 회사에 방문한 이날 법원으로부터 회생신청의 첫 단계인 타당성이 인정돼 회생절차에 들어가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게 됐다.

39년 생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팔순인 유 회장은 현대차에서 자재과장 등을 거쳐 부품담당 이사로 퇴임한 뒤 82년에 대화연료펌프의 전신인 대화정밀을 창업했다. 현대그룹에서 자동차사업을 진두지휘했던 '포니정' 정세영 회장이 당시 유 회장을 면담해 자동차 부문으로 이끈 인물이기도하다. 유 회장이 현대차 공채 1기였던 셈이다.

유 회장은 "그 시절 자동차 연료펌프는 국산 제품이 전무했다. 부품의 상당수를 미국 포드사에서 가져와야했던 것이 현실이었다"면서 "인간의 심장과 같은 연료펌프를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 현대를 나와 회사를 차렸고, 노력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97년 IMF를 겪으면서 현대차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집중한 유 회장은 머큐리(미국), 보쉬(독일), 델파이(미국), 타타대우(인도), 미쓰비시(일본)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그러다 유 회장이 개성공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초반 개성공단이 1단계 건설을 시작하고, 2004년에 시범단지 입주기업 15곳 명단에 포함되면서다.

유 회장은 "정부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처음 선정하는 일이었던 만큼 기준이 매우 까다로웠다. 제일 좋은 재무구조를 가졌던 기업이 이젠 (재무가)가장 않좋은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유 회장은 개성공단에 각각 80억원과 100억원을 들여 '개성대화'와 '개성유니'를 잇따라 설립하고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두 곳에서 채용한 북한 근로자만 900명이 훌쩍 넘었다.

필터의 90% 가량, 기계식 펌프의 90% 정도를 개성에서 만들면서 북한에서의 생산비중도 절대적으로 많았다.

개성공단이 10년 넘게 운영되는 동안 가동 중단과 일시 폐쇄 등 악재가 벌어질 때마다 유 회장이 포기하지 않고 버텼던 것은 투자금 등 본전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개성공단이 남한과 북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의 미래 경제를 이끄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시키고, 북한이 바로 폐쇄조치를 결정하면서 공백기간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2016년 2월10일)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기업인 몇명을 갑자기 청와대 인근으로 부르더라.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갔는데 개성공단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으니 빨리 물건을 빼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장관에게 발표 시점을 사흘 정도 늦춰달라고 건의했다. 그래야 물건을 남쪽으로 가져올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야기를 나누던 장관이 청와대로부터 호출을 받고 들어간 뒤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그날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하고 말았다." 당시 상황이 기가막히다는 듯 유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대화연료펌프 본사 1층에 자체 개발한 전기차가 세워져있다. /김승호 기자



유 회장과 임직원들은 개성공단이 전면 폐쇄된 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자칫 30년 훌쩍 넘는 기간 공을 들인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충남 당진에 대체 공장을 마련하고, 인도 델리 인근에 공장도 세워 납기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유 회장은 "2만개가 넘는 자동차 부품 중 필터는 수요가 많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로 꼽힌다. 인건비가 낮아 가격 경쟁력이 뛰어났던 부품을 (개성공단의 문을 닫았다고)비싸게 팔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객과 가격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오랜 시간 들이다보니 그 사이 회사는 점점 어려워 질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창사 40주년을 향해가던 대화연료펌프가 이처럼 부도까지 간 가장 큰 원인은 두 말할 것 없이 개성공단이다.

유 회장은 5·24조치를 취한 이명박 정권과 더 나아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결정한 박근혜 정권의 관련 정책에 대해 한 마디로 "잘못했다"고 잘라말했다.

"수출 비중이 많다보니 회사는 자금을 해외에서 주로 융통해야했다. 통상 수출 대금 결제는 60일인데 당초는 지난 1월31일에 돈이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거래처인 미국의 C사로부터 수금이 늦어지고 액수도 줄어들면서 5억원 정도의 어음결제금액이 부족하게 됐다. 거래은행이 본사 차원에서 '불가' 판단을 내리면서 부도 처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은행이 통보한 시간은 설 연휴 직전인 1일(금요일) 자정쯤이었다. 기업이 잘 나갈 땐 돈을 많이 가져다 쓰라고 권유하던 은행이 '비올 때 우산 뺏는 격'으로 조금도 기다려주질 않더라."

유 회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유 회장은 "부도 처리 후 우리의 회생신청에 대해 법원이 받아들였고, 부동산 매각과 더불어 회생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인천송도 공장, 베트남 공장, 인도 공장 등을 중심으로 추진해 온 초소형 전기자동차 개발 등 미래 성장 동력을 계속 추진하고, 향후 개성까지 다시 열려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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