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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강화에 산다는 것

홍경한(미술평론가)



강화에 산다고 하면 다들 배산임수에 별장 같은 집에서 유유자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큰 개와 함께 뛰노는 상상을 한다. 열이면 열 모두 그렇다.

애석하게도 내 현실은 다르다. 난방비가 무서워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아파트에 산다. 텃밭은커녕 제대로 된 화분 하나 없다. 큰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매일이 분주하기에 개를 위해 그러지 못한다. 고독사하는 개가 없을 리 없다.

이곳은 생활편의시설도 열악하다. 그 흔한 '이마트'하나 보기 힘들다. 금융은 '농협'이, 식자재유통은 '하나로마트'가 꽉 잡고 있다. 논밭 옆 '수협'이라는 괴이한 풍경도 여기의 특징이다.

할인매장은 '꼬끼오'가 터줏대감이다. 상호가 왜 저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강화가 유독 닭과 친하다는 건 배달 앱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거의 통닭의 무대다. 온갖 닭이란 닭은 시리즈로 다 있다. 이처럼 서울에 살던 시절 대비 강화의 삶은 생경하고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온갖 새소리는 도시의 인공적인 소리들과 차원이 다르다. 도시에선 자취를 감춘 반딧불이도 간간이 눈에 띌 만큼 청정하다. 천연기념물인 강화갯벌 및 저어새번식지를 포함해, 읍에서 10분만 벗어나도 이곳이 과연 서울 근교인가 싶을 만큼 고은 자태의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문화적 맥락과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보물까지 풍부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과 대웅전, 약사전, 범종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수두룩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 전등사는 조선시대 250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문서를 보관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도 전등사다.

강화엔 우리나라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인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전통 조선 한옥 구조물에 서양 기독교식 건축양식이 혼합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세워진지 60년이 넘은 천주교 강화성당, 고려사 및 신동국여지승람에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 전해지는 마니산 참성단 등 역사 깊은 문화재와 유적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미술공간도 꽤 된다. 강화읍 소재 '강화미술관'은 미술인들의 사랑방이다. 특이하게도 전등사는 2008년부터 정족산 사고에서 현대미술작가전을 열고 있다. 전원 유광상 작가의 '전원미술관'이나 천자문을 상설 전시하는 '심은미술관', 국내외 주요 작가들을 망라한 전시로 명성이 자자한 '해든뮤지엄' 등도 강화의 예술적 터전이다.

이중 2013년 개관한 '해든뮤지엄'은 웬만한 미술관 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숲 속에 위치해 특유의 고요함이 있는데다, 전시 내용도 좋아 미술 좀 안다는 이들은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다.

넉넉한 하드웨어 못지않게 강화에는 상당수의 미술인이 거주한다. 어림잡아 100여명 이상은 된다. 대부분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복잡한 도시를 떠나 호젓한 곳에 터를 잡은 이들이다. 때문에 왕래는 드물지만 동일한 미술계 사람들이 한 지역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든든한 기분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이 강화엔 숨겨진 문화예술이 많다. 하지만 강화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문화예술적 배경 역시 자연이다. 과거 모네나 밀레, 추사가 그러했듯 예술가들은 그 천혜의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곡을 짓고 노래를 부른다. 나도 덩달아 쓰고 따라 부른다. 강화에 살면 절로 그리된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한 부분이 되고, 만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 그 맛에 강화에 산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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