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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희망 2019] ② 양심적 병역거부 변호사 백종건, 계란으로 바위를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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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포기해온 새해 계획에 얼굴이 빨개지는 연말이 왔다. 그 많던 계획을 세운 건 남들의 시선인지, 아니면 진짜로 되고 싶은 미래의 나였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이 어려운 질문에 온몸으로 대답해온 사람들이 있다. 길과 길을 잇거나 계란으로 바위를 깨거나, 성공의 기준에 굴복하지 않은 반항아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걷든 뛰든, 너 자신을 믿어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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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건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메트로와 인터뷰 하고 있다. 그는 올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선고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생활을 마친 처음이자 마지막 변호사'가 됐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깼다는 평가에 대해 "저는 함께 계란을 던진 병역 거부자의 한 사람일 뿐"이라며 "다만 제가 자란 환경과 여건 상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검사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이 문제에 법으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키워왔다. 그는 법원의 빠른 유죄 선고를 기다리던 이들과 달리,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를 위해 싸우다 2016년 3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됐다./손진영 기자 son@



2018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단어에 '양심'이 빠졌다면 오보가 분명하다. 올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대체복무와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을 열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변호사 신분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지난해 수감생활을 마친 백종건 변호사(사시 50회·연수원 40기)는 "엄정한 심사 후 중증장애인과 치매노인 돕기, 재난현장 투입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대체복무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를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쳐온 세월을 떠올리며 대법원 판결문을 찬찬히 넘겼다.

◆"변호사 돼 법으로 싸우자"

백 변호사의 조기교육은 남들이 생각하는 전과목의 범위를 4살 때 넘어섰다. 의사인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 1988년부터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신념에 따른 대가를 알면서도,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6년 침례를 받아 정식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검사이신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법조인의 꿈과 함께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용기를 키워갔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비판적 사고와 문제의식, 법으로 싸워야겠다는 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을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중퇴다. 몇몇 친구가 처벌 없는 군 면제를 위해 중학교 중퇴를 택했지만, 백 변호사는 '정면돌파'를 위해 2000년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퇴했다. 이후 2002년 부산대 법대에 진학한 뒤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논의가 이어지던 대체복무제도는 이명박 정부 첫해인 이때 사장됐다. "사법연수원 입소를 준비하다 대체복무 취소 소식을 듣고는 '원래 계획대로 싸워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법조인이 되어 피고인이자 변호인으로 이 문제에 직면해 최선을 다하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해결되리라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그로부터 10년이 걸렸네요."

'10년 전쟁'의 서막은 2011년 2월 10일에 올랐다. 사법연수원생 시절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국선변호를 해오던 그는, 공익법무관 훈련 입소 대신 의뢰인과 서해 일몰을 봤다. 법무관 훈련 기간은 4주였다. 통상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입대 영장 재발부를 막으려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는 점을 보면, 변호사의 계산으로 보기 힘든 결정이었다. 그해 6월 백 변호사는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절망적인 상황은 계속됐다. 같은 해 8월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병역법 88조) 합헌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12월이 되자 바위 틈이 보였다. "88조 처벌조항만 다시 다뤘다가는 3달만에 100% 기각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새 조항을 찾다가, 병역의 종류를 다룬 5조에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해 88조와 함께 헌법소원을 냈죠. 하지만 이번 선고를 보니, 헌법재판소가 저보다 훨씬 연구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5조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11월 대법원도 병역법 88조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포함된다며, 오승헌 씨에 대한 징역 1년 6개월 선고를 창원지법에 파기환송했다. 백 변호사는 오씨의 1심 변호인이다.

백 변호사의 수감 이후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다. "어떤 판사께서는 제가 수감되고 무죄판결이 쏟아졌다고 하셨습니다. 판사들도 법원의 법대 아래에서 재판받던 사람 중에 같은 법조인이 서게 되니,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진지한 고민을 한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지요. 저는 '나의 수감이 단순히 허공에 돌 던진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감옥 가고 싸운 점이 디딤돌이 됐다'고 위안 하고 있습니다."/손진영 기자



◆수감생활로 '사실상 대체복무'

하지만 동 트기 직전의 새벽은 어둡기만 했다. 앞서 200명 가까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무죄 취지 무료 변론을 이어가던 그는, 2016년 3월 대법원 확정 판결로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됐다. "2013년 같은 종교를 가진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언제 수감될 지 몰라 매일 애틋했습니다. '오늘도 이 사람과 함께 해서 다행'이라는 감사 기도를 이어갔지요." 아내가 운전한 차에서 내린 오후 7시. 준비한 순간이 왔고, 두 사람은 울지 않았다. 부슬비가 내렸다.

백 변호사는 군번 대신 수감번호 983번을 달고 '사실상의 대체복무'를 시작했다. 교도관들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환영했다. 한달 간의 인성교육을 마치고, 그는 수용자 입소·출소·이송·이입과 이들의 소지품을 관리하는 '영치'에 배치됐다. 병역거부자들은 이 밖에 ▲치매 노인 간병과 약 분류·배달 업무 ▲신문·서신·책을 살피고 문제가 없으면 지급하거나 ▲수용자 식사와 설거지를 맡는 취사 일을 했다.

"심리치료와 분노조절 교육을 받는데, 교도소장이 '인성교육 강사로 와야 할 사람이 교육 받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마지막에 소감문을 적었는데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상은 '특별 면회권'이었어요. 10분 제한인 일반 면회와 달리, 칸막이 없이 30분을 면회할 수 있었죠.

야근과 주말 출근 사이 주어진 짧은 시간, 그가 공을 들인 건 '편지 쓰기'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 알고 지내는 법조인 등에게 1000통 정도 썼습니다. 하루 평균 2통을 쓴 셈이죠. 마지막 문장은 항상 '희망을 담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변화를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2만명에 가까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그가 던진 계란은 결국 올해 바위를 깼다. 특히 백 변호사 수감 이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바라보는 법원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지난 6월 소수의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정당하다면서도, 그에 따른 직업수행에 제한이 있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실형 집행이 끝나거나 형 확정이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자의 변호사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변호사법에 대한 이의제기였다. 해당되는 인물은 단 한 명. 백종건 변호사였다.

뒤늦은 판결이 섭섭하지 않았을까. "지난해 5월 출소하고 얼마 안돼 스위스 제네바 소재 국제연합(UN) 유럽본부에서 이 문제를 주제로 연설했습니다. 만일 감옥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해외 출국길이 막혔겠지요. 엠네스티의 연설 제안은 출소 한달 뒤인 6월에 왔으니,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백 변호사는 무엇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대전지법에서 항소중인 사촌동생, 현재 고등학생인 막내 동생이 감옥에 가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벽 변호사가 생각하는 대체복무제의 조건은 최소 1년에 달하는 엄격한 심사 과정이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면 (집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실감나는 전장을 다룬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을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전쟁 게임 대신 축구 경기를 다룬 '피파(FIFA)' 시리즈를 좋아한다. 그는 우리나라에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부산 지역 피파 대회에서 우승했다./손진영 기자



◆"생명·재산 보호하는 대체복무로 국민 인정 받아야"

법원의 주요 판결은 온나라를 토론장으로 만든다. 대체복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36개월간 교정 시설 내 복무안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의 2배다. 시민단체들은 징벌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백 변호사는 대체복무의 조건으로 ▲군 복무와 형평성이 있고 ▲징벌적 성격이 아니면서 ▲군과 무관한 복무가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어떤 것이 징벌적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교정시설보다 힘들더라도 대만처럼 24시간 중증장애인과 치매 노인을 돕는다든지, 소방관을 보조해 화재와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국민께서 대체복무자의 봉사와 희생을 지켜보면서, 이 제도가 정말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백 변호사는 앞서 분단 경험을 가진 독일 사례 역시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대체복무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독일의 징병제 폐지가 한참 늦어진 이유는 대체복무제 폐지 이후 사회복지 체계에 들어갈 비용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대체복무의 사회적 유용성이 징병제 폐지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셈이죠."

대법원 소수의견에서 제기된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 지적에도 할 말이 있다. "카톨릭과 개신교, 불교와 이슬람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부처의 가르침에 따른 오태양 씨, 이번 헌재 청구인 중 한 명인 카톨릭 신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 변호사는 너도나도 '양심'을 들어 병역 거부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이해한다. 이 때문에 엄한 심사와 고된 복무로 신념을 증명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폐지가 추진되는 현행 의무소방 복무는 육군보다 2~3달 길고 공군보다 한 달 짧습니다. 하지만 의무소방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적용하되, 복무 기간을 36개월로 적용하면 앞다퉈 지원할까요. 심사 기간 1년에 대체복무 3년이면, 4년제 대학 졸업자는 금방 30살이 됩니다."

그간의 고난을 풀어놓던 백 변호사는 인터뷰 말미에 유머를 잊지 않았다. "함께 사법시험 공부한 형들이 '이건(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절대로 안 된다'며 치킨 내기 했는데, 얻어 먹어야겠습니다."병역 거부를 선언한 2011년에는 위헌 결정을 기다리며 와인을 사 두기도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해인 2008년산이라 의미가 깊다. "이번에 대법원 무죄판결이 나왔으니 함께 싸운 동료들과 함께 개봉하려 합니다. 와인 하나 여는데도 8년 가까이 걸렸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있을 때 따라고 해서 못 열고 있어요(웃음). 아무래도 친구 결혼식 즈음 마시지 않을까 합니다."



◆'더 큰 희망'을 담은 도전, 변호사 재등록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백 변호사의 2019년 첫 과제는 변호사 재등록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위원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현행법을 들어 백 변호사의 재등록을 거부했다.

하지만 11월 대법원 판결로 백 변호사는 세 번째 재등록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첫 소명서 말미에 적힌 '더 큰 희망을 담아'는 올해 '1년 전보다 더욱 더 큰 희망을 담아'로 바뀌었다. 다음 소명서를 읽을 위원들은 그의 희망에 응답해줄까. "이 사안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한 중요한 법적·사회적 논의를 함유하고 있고, 변호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답을 찾는다면, 변호사들이 '인권의 수호자'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엄숙히 선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7월 27일 백 변호사의 두 번째 '변호사 등록 신청 관련 소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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