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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떠도는 작가들

홍경한(미술평론가)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이 예술 및 문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일정 기간 작업실을 옮겨 작업하며, 입주 기간 동안 거주 및 제작비용과 설비, 시설 등의 지원을 받는 공간을 말한다. 작업실 지원에 기반한 창작스튜디오가 1년 단위 공간 제공이라는 형태로 절충되면서 레지던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우를 묶어 통상 ‘창작공간’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예술가 양성 및 창작 진흥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내 창작공간들은 짧으면 3개월, 길면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임대한다. 4-5년 이상 머문 작가도 드물지 않은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 200여 안팎의 공사립 창작공간 대부분이 유사한 입주기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미술작가들은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꽤나 분주해진다. 12월부터 새해 1-2월 사이 종료될 창작공간 입주기간에 맞춰 미리 다른 작업공간을 알아봐야 하고, 10-11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창작공간 공모일정에 따라 서류 및 인터뷰 심사를 받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창작공간 입주 공모 시기가 오면 작가들은 일단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다. 입주신청서, 포트폴리오, 작품 활동 계획서와 같이 작성해야할 서류가 많아 진중하게 앉아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 짬이 없다. 더구나 과학이나 수학이 아닌 예술에서 어떤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도 이러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야 하고,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일자체가 그들에겐 곤욕이다.

특히 많은 창작공간들이 요구하는 ‘지역연계’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렇잖아도 어려운 계획서 작성을 더욱 힘들게 한다. 지역을 말하지만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단기 입주를 통해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터무니없는데다, 작가가 오랫동안 지역에 거주하면서 작가 스스로 지역을 이해하고 주민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도 선정되려면 주문한 양식에 맞춰 억지로라도 써야 한다. 단발성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지역참여가 시민 문화예술향유를 확장하고 도시재생이라는 보다 큰 흐름에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정부와 지자체, 위탁기관들의 막연한 정책적 신념을 거스르면 안 된다. 지역주민 및 학생과 연계한 미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하는 조건도 감수해야 하고, 예술과 작가자체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도구화할 소지 등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서류도 서류지만 당락의 불안감도 붓을 들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선정되면 1년이라는 작업시간을 확보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대비책까지 고려해야 한다. 허나 대개 대안이 없다. 창작공간 입주를 희망하는 작가들의 다수는 물론 한국미술인 80%가량이 월 100만원 미만의 수입에 불과한 현실에서 개인용 작업실을 구하는 건 마음처럼 녹록한 게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붙어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다.

이런 현상은 해마다 되풀이 된다. 바늘구멍 같은 입주 가능성을 끌어안은 채 여기저기 공모에 응해야 하고, 선정되든 떨어지든 잠시 머물다 옮겨야 하는 도돌이표 같은 삶, 떠도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 겨울은 유독 춥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에 위치한 창작공간일지라도 작업을 잇기 위해 입주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은 싫든 좋든 미술계 유목민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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