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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건/사고

[르포]소방의 날 일어난 '종로 고시원 화재' … 스프링클러조차 없는 주거취약자 피해 '또'

9일 새벽 5시경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의 한 고시원 화재 현장 창 밖으로 보이는 거센 불길./ 시민 이재호 씨 제공



9일 새벽 5시경. 이재호(62) 씨는 수표교 인근에 위치한 가게 앞을 청소하다가 '악!' 소리를 들었다. 이 씨는 '웬 미친놈인가' 싶어서 돌아보니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고 했다. 그는 황급히 신고했다. 소방 담당관은 "이미 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씨는 두 번째 신고자였다. 새벽 5시 3분이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창밖까지 붉게 넘실거렸다. 비상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대피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만 새벽 청계천에 울려 퍼졌다.

제56회 소방의 날인 9일 오전 5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에서 불이 나 17명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중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올 초 종로 여관 화재 사건에 이어 주거취약자의 안전 문제에 다시 비상등이 커졌다.

종로 경찰서·소방서 상황판 모습./ 배한님 수습기자



CPR을 조치한 7명은 전원 사망했다. 그중 5명은 현장에서 숨졌고, 2명은 병원 이송 후 목숨을 잃었다. 소방 당국은 부상자 11명 중 1명은 현장 조치 후 돌려보냈고, 나머지 10명은 병원으로 이송했다. 건물 내부는 U자형 복도였다. 방은 양 옆과 중앙부에 모두 배치되어 있었다. 출입구는 하나뿐이어서 대피로 확보에 어려움이 컸다. 창문 쪽 비상 탈출용 완강기의 존재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사망자는 대부분 출구에서 먼 안쪽 거주자였다. 고시원 2층에 살던 김승민(63) 씨는 "시체 다섯 구가 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부상자 중 한 명은 옥탑방에 살던 정모(62) 씨다.

9일 오전 화재 현장을 찾은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좌)과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 배한님 수습기자



지난 1월 종로 여관 화재 때처럼 불이 난 고시원엔 간이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비상벨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건물에 고시원이 들어선 것은 2007년이었다. 고시원 시설은 2009년 7월부터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해당 고시원은 그 이전에 사업 등록을 마쳐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소급입법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소방관의 설명이었다. 현장을 방문한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건 형법 문제가 아니고 국민 안전을 위한 건데 왜 소급입법이고 뭐고 소리가 나오느냐. 국민 안전을 위해 바로 조치해야 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재가 발생한 3층 창문 모습./ 배한님 수습기자



불이 완전히 꺼진 오전 11시까지도 매캐한 냄새가 났다. 화재가 진압된 건물에선 물이 뚝뚝 떨어졌고, 깨진 창문에는 시커먼 그을음이 보였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2층과 달리 화재가 시작된 3층 창문 안쪽은 숯덩이처럼 새카맣게 변했다. 건물 외벽에 붙은 전압기 선은 모두 잘려 있었다.

205호에 거주했던 이모 씨(56)는 "벽지나 커튼은 방염 처리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여긴 대부분 영세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물품을 쓰지 않고 싸구려를 썼다.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시원 방은 1평에서 1.5평 정도의 영세한 곳으로 보증금 없이 월 25만원에서 30만원이면 방을 빌릴 수 있었다.

2층 거주자 정모 씨(41)는 짐을 모두 두고 나와 현장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경황이 없어 휴대폰조차 들고나오지 못했다. 정 씨는 "여기 사는 사람은 거의 일용직이다. 젊은 사람이 없다. 3층에 오래 산 분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비상구나 소화기 위치 등에 대해 고지받은 게 없었다"며 "눈에 안 띄는 곳에 있긴 했지만, 정확히 어디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개수도 몇 개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전선이 모두 잘린 전압기./ 배한님 수습기자



사고가 난 종로 청계천 인근엔 낡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벽과 벽 사이에 팔 하나를 넣을 틈도 없었다. 사고가 난 고시원 근처 식당 주인은 "종로에는 한국전쟁 직후 지어진 건물이 많다. 다 낡았다"면서 "이런 데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배한님 수습기자



현장을 찾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혹시 소방차들이 진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나 걱정을 했는데 그것은 마침 도로 옆이라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안쪽에 위치한 건물에서 불이 났다면 피해는 더 심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소방에 대한 대책이 강구가 돼서 스프링클러 등 소방 대책이 완비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내일 오전 10시 소방·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전기안전공사 등 관계기관과 공동 감식반을 구성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301호 전열기에서 불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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