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오른쪽 두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경기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라인 투어 후 간담회를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 초격차가 유지돼야 한다."
지난 8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연구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외에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생활가전 등 규모가 큰 분야를 전부 가지고 있는 기업 수장이 직접 특정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재계에서는 2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에서 글로벌 1위를 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에 자신감 외에도 절박함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몇 년전부터 전세계 반도체 산업은 호황기를 맞고 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세계에서 20여개 이상의 회사들이 치킨 게임을 벌이다 사라진 가운데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살아남아 호황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1조6100억원이었으며 3분기 영업이익은 17조282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8.9%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어지간한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에 맞먹는 금액을 영업이익으로 남긴 것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분기 영업이익 5조5739억원을 기록했고 3분기는 약 6조1000억원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 반도체 산업은 강력한 도전을 맞고 있다. '반도체굴기'를 외치며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는 중국업체의 부상 때문이다.
후발주자인 중국업체가 암암리에 파격적 대우를 약속하며 한국 반도체 기술자를 빼가고 있다는 건 이미 업계에 널리 퍼진 사실이다.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미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지분투자를 하고 있다.
경쟁자의 등장만 국내 산업에 위협이 되는 게 아니다. 최근 반도체업계에서는 한국의 미세공정 경쟁력이 확고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반도체 기업 경쟁력을 대표하는 최신 미세공정을 만드는 핵심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네덜란드의 ASML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EUV 노광 장비는 ASML이 독점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ASML 장비 주문내역만 봐도 전세계 반도체 생산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반도체 제조를 위한 실리콘 웨이퍼 위에 얼마나 가늘게 회로를 그릴 수 있는 지가 결정적인 생산효율 차이를 가져온다. 더 집적된 회로를 가질수록 소비전력이 적어지고 칩당 용량은 커진다. 따라서 생산단가 경쟁력에서 크게 앞서가게 된다. 그런데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에서 7나노, 5나노 등으로 고도화되면서 설계와 생산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중이다.
미세공정은 특히 주문을 받아 생산만 해주는 파운드리 부분에서 더욱 격차를 만든다. 비용감당이 안되다 보니 세계 2위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GF)는 7나노 공정 개발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파운드리 분야 1위인 대만 TSMC는 5나노 공정에 250억 달러(약 27조9000억원)를 투자해 대만 타이난에 위치한 사우스타이완 사이언스파크 공장에 12인치 웨이퍼 팹을 짓고 있으며 2020년 양산 예정이다. 여기에는 3나노 생산 설비도 입주할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TSMC의 5나노 예상 투자액은 7000억 대만달러(약 25조7000억원)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현재 ASML의 수주잔고를 포함해 업계에서 가장 많은 장비를 확보했다. EUV 노광장비 연구개발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사업화 가능한 생산성을 확보했다. EUV 장비를 이용해 내년부터 7나노 반도체 대량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5나노 공정은 2020년에 안정화시킬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경기도 화성 반도체 공장 부지 내에 세계 최초로 EUV 전용 생산라인 설립을 시작했으며 내년에 완공해 2020년 가동을 시작한다.
미세공정이란 트랙에서 쫓아오는 중국과 달아나는 한국 사이의 경주는 어떻게 끝날까. 초격차를 외치는 한국 반도체 업계의 노력이 거센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