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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기차표 기다리며 두런두런…새벽녘 서울역은 '한지붕 대가족'

최종수정 : 2018-08-28 15:20:49
28일 오전 2시 19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추석 연휴 기차표 예매를 기다리고 있다. 이범종 기자
▲ 28일 오전 2시 19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추석 연휴 기차표 예매를 기다리고 있다./이범종 기자

첫줄에 서는 사람만 아는 재미가 있다. 추석 기차표 예매 전날 서울역은 친족보다 먼저 만난 이웃들의 사랑방이 된다. 설과 추석, 일년에 두 번 만나는 첫 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항상 같은 시간, 비슷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귀성길 기차표 구매 행렬을 카메라 수십대가 담아내기 8시간 전. 28일 새벽 1시 서울역 첫 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온라인 예매가 정착된 탓인지, 스무명 남짓 되는 시민들이 눕거나 앉은 채로 예매 시간 9시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첫 기차표는 전날 오전 10시부터 기다려온 중년 여성이 가져갈 예정이다. 네 번째 자리에 앉은 심운일(70) 씨와 강모(79)씨도 그와 일년에 두 번 보는 사이다. 강씨는 1969년 상경한 뒤 매년 고향집을 찾았다. 사당에서 온 심씨는 김포에 사는 딸의 가족이 부산 시댁에 편히 갈 수 있도록 7년째 기차표를 사왔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부모가 자식 해주는 것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웃는다.

심운일 씨가 스티로폼을 신문지로 감싼 일회용 배게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4번째 순서로 줄을 선 심씨는 이날 딸의 시댁 방문을 위해 부산행 KTX 표를 구입했다. 이범종 기자
▲ 심운일 씨가 스티로폼을 신문지로 감싼 일회용 배게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4번째 순서로 줄을 선 심씨는 이날 딸의 시댁 방문을 위해 부산행 KTX 표를 구입했다./이범종 기자

◆배게는 필수…'웃픈' 과거 회상도

현장 예매 경력 7년인 그는 이날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다. 스티로폼에 신문지를 싸서 만든 베게와 얼린 물, 아이스커피. 돗자리는 기본이다. 마침 이날은 비가 내려 우산을 가져왔다. 우산은 잠시후 자리에 누운 심씨의 조명 가림막이 되었다. 베게는 호남선 대기줄에 넘겨주고 떠난다고 한다. "저기는 모레(29일 예매) 아니여. 그러니 나눠주지. 이걸 가져가서 무엇 하나. 해마다 주고 가는겨." 호남선 사람 중 한 명은 이날 서울역에서 추석 선물을 먼저 받게 되었다.

동시대 기찻길을 기억하는 두 사람은 옛 서울역사 앞 예매 행렬을 떠올렸다. 밤새 이슬과 비를 맞으며 차표를 끊던 시절, 강씨는 당시 예매 현장을 "개판"으로 묘사했다. "서로 밀고 사람 다치고…. 깡패들이 새치기하고. 질서가 어딨어, 힘 센 놈이 장사지."

경찰이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경찰 있어봐야 사람이 수백명"이라고 강조한다.

심씨는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던 1980년대 초반 귀성길도 회상했다. "줄을 서다가 창문을 열고서 사람 들어 집어넣는거여."

'가방'을 넣지 않았느냐고 고쳐 묻자 "아니 사람을"이라는 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온다. "넣어서 자리 맡게 했다니까. 오늘처럼 기다리는 건 양반이고."

종류가 적고 느린 기차도 그때 그 시절 귀성길을 대표하는 장면이었다. 이들은 무궁화호보다 느린 비둘기호는 부산까지 8~9시간. 그보다 느린 완행은 10시간이었다며 혀를 찼다. "우리 80년대, 70년대 후반에 다닐 때는 이런 차(KTX)가 어딨어(심씨)." "꼭대기 짐 싣는데까지 다 올라갔는데(강씨)." "차 안에 들어가면 (좁아서) 걸어다니지를 못했어(심씨)."

웃지 못할 귀성길 풍경이 라디오 방송처럼 흘러나오는 사이, 코레일 직원들이 대기 인원을 위한 돗자리를 새로 깔고 있었다. 이렇게 돗자리가 제공된지는 3년 되었다고 한다.

28일 오전 9시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차표 현장 예매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대기줄에 몰려들고 있다. 이범종 기자
▲ 28일 오전 9시 서울역에서 추석 연휴 기차표 현장 예매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대기줄에 몰려들고 있다./이범종 기자

◆사람을 잇는 건 여전히 명절

이때 시간이 새벽 두 시. 서울역 대합실은 두 줄이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작년보다) 진짜 더 적네" 심씨는 모바일 시대를 실감했다. 명절 기차 승차권은 온라인에 70%, 역과 판매 대리점에 30%가 배정됐다. 강씨는 인터넷 예매가 활성화 되기 전에는 이 무렵 서울역이 사람으로 가득했다며 주위를 돌아봤다.

휑한 대합실을 보던 심씨가 또 다른 첫줄 친구를 찾는다. "젊은 사람 오늘 안 왔네." 강씨가 고개를 젓는다. "왜 오늘 왔는데. 오늘 대전으로 제사 지내러 간대. 설에는 온다더라고."

첫줄 고정 멤버 7~8명은 오는 시간도 서는 자리도 늘 비슷해 서로 신기하다고 한다. 그렇게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7년이다.

기차표를 기다리며 이웃과 나누는 정도 있지만, 정작 요즘 명절은 가족 보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푸념도 나왔다. 아들, 손자와 부산에 가는 강씨는 누나를 제외한 4형제 가족과 명절을 보낸다. 그는 20여명이 가득 모일 집을 떠올리며 웃다가도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에는 연휴 끝까지 다 모여 놀았는데, 이제는 제사만 지내면 저희들 처갓집에 바로 가고 그래. 조카는 음식 먹고 조금 있다 가." 요즘 명절에는 가족이 오면 다행이라는 설명이다.

첫줄 끝에는 20년만에 기차 예매에 나선 김용민(52)씨가 스마트폰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이날 밤 9시에 도착한 그는 단 몇 초 만에 끝나버리는 온라인 예매 경쟁을 피해 현장 예매에 도전했다. 김씨는 옛 서울역사 앞에서 역무원이 손글씨로 적어준 기차표를 받아들던 시절과 달라진 환경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승차권 구입 신청서는 옆 사람의 도움으로 작성했다. 신청서는 승차일과 열차 종류, 출발 시간과 장소 등을 1~3순위로 나눠 적어야 한다. 그가 정성껏 적은 신청서에는 처가가 있는 동대구역이 목적지로 잡혀 있다. 그는 이번 예매 결과에 따라 앞으로 명절에 자가용을 탈 지, 기차에 오를 지 정할 생각이다.

오전 9시. 시민 200여명이 현장 발권을 위해 모여들었다. 코레일 관계자는 예매 대기줄이 전철과 버스 첫 차를 타고 온 시민들로 붐비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운일 씨는 원하는 시간대인 22일 부산행 KTX 표를 끊었다. 심씨는 "(아침에 도착한) 딸과 함께 식사하고 들어간다"며 웃었다. 옆에 앉았던 강씨도 예매를 마친 뒤 다른 기자의 질문을 받으며 역을 빠져나갔다.

코레일은 이날 경부·경전·동해·충북선 등의 승차권을 판매했다. 29일에는 호남·전라·장항·중앙선 등 승차권을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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