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의 탕탕평평] (108)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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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탕탕평평] (108)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최종수정 : 2018-07-29 11:56:23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동시통역사·정치평론가·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동시통역사·정치평론가·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고인이 되신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의 영결식이 국회에서 있었다. 고인은 필자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다. 많은 국민들은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평가되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믿기지 않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적잖이 힘든 시간이다.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스웨덴의 정치문화가 적잖이 거론된다. 우리나라와 스웨덴의 정치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 정치인 즉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 국회의원들이 주요 비교대상이다. 세비의 차이, 보좌진의 차이, 연금조건, 면책·불체포 특권 등 많은 것들을 비교한다. 얼핏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사실상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정치문화와 풍토를 같은 기준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후보의 입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정신적·문화적 정치풍토가 지나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하다. 소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려야하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순간부터 무조건적인 '수퍼을'로 살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생긴다. 그 전제조건은 결코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원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이다.

아직 입후보를 한 것도 아니고 아직 정치권에 진출하지도 않은 잠재적 즉 예비정치인들에게 유권자들은 필요이상의 잣대를 적용하고, 직간접적인 경제적 부담을 주고, 오랜 세월 만들어 온 예비정치인의 삶 자체를 그 수많은 유권자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재단(裁斷)한다. 소위 좋은 놈, 나쁜 놈, 죽일 놈을 입술 하나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스웨덴 국민들의 의식과 정치에 대한 마인드 자체가 다른데 무조건 스웨덴의 정치문화와 풍토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부각시키고 얘기한다면 그것은 정말 억지가 아닌가.

소위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적 역량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부자가 아니면 집을 팔고, 빚을 내어 정치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자금으로 많은 돈을 쓰고 싶은 정치인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 할 경우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탕진하고도 낙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나마 당선되면 다행인데 당선이 돼도 정치자금은 계속해서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정치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버렸던 만큼 어느 순간 회복하고 싶고 보상받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언론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단골메뉴인 정치인의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수수'가 다 그런 것이다.

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필자의 경우도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암묵적인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선후배나 친구 같은 사이에 개인적으로 혹은 특별한 목적의 업무상 미팅을 해도 상대방은 필자에게 이전의 관계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왜 이곳저곳 얼굴을 자주 보이지 않느냐, 어느 모임에는 참석하고 어느 모임에는 불참한 것을 서운해 한다. 그럴 때마다 적잖이 당황스럽다. 필자는 서울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지방에 살고 있으며 업무상 매일같이 서울을 오가고 더 먼 지방을 수시로 다니면서 일한다. 세 아이의 아빠이고 한참 일 할 나이의 가장이다. 그분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거의 아무 일도 안하고 지역에서 여기저기 얼굴 보이면서 인사만 하고 다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필자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를 얘기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러하다.

고인이 되신 노회찬 전 의원도 역시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노동자와 서민, 지극히 낮은 자리에 있는 국민들을 대변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쉬운 길 놔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 참 훌륭한 정치인이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고인이 평생 보여준 모습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아 인정해야 하면 인정하고, 억울한 부분은 당당하게 변론하셨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우리는 정말 훌륭한 정치인을 잃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고인만큼만 양심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나머지 299명의 국회의원 중 살아남을 의원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이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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