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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탕탕평평] (105) 혼삶

김민 데일리폴리 정책연구소장. 동시통역사·정치평론가·전 대통령 전담통역관·주한 미 대사관 외교관



요즘 '혼밥', '혼술'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적잖이 접하게 된다. 즉 '혼자 식사를 하다'와 '혼자 술을 마신다'는 의미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직업상 일을 하다보면 적잖이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차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상황에서 오는 편안함과 자유로움 또한 적지 않다.

하루하루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이다. 때로는 새벽에 눈을 뜨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새롭다기보다는 종일 피곤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인사하고 대화하고 일을 하는 일상들이 내 본인의 의지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뭔가 가공된 모습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미팅과 모임, 참석해야 하는 많은 행사들이 있다. 사실상 내 자신이 내켜서 가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업무상의 모임과 미팅을 제외하고 친목회에 가까운 모임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한가. 참석해도 특별한 것 없고 불참하면 그것이 안주거리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피곤한가.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의 모습은 지극히 획일적이다. 저녁식사 하면서 술을 마시고 세상얘기와 돈 얘기, 자식자랑, 자기자랑이 모든 대화를 장식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은 누군가의 흉을 보는 그런 일의 반복에 필자는 상당한 피로감과 회의감까지 느끼곤 한다. 또한 거기서 우정과 의리와 단합을 강조하지만 그 시효는 그 자리가 파하는 순간까지다.

사람의 관계와 신뢰는 결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주 만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누군가를 함께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쌓아지는 관계가 과연 진실하고 의미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익숙한 것과 친한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자주 접하지 않아도 암묵적인 소통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자주 접해도 시각적으로만 익숙할 뿐 진실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삶에서 오는 피곤함과 피로함을 감안하면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도 충분히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코 혼자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 하며 그나마 자신에게 현실적이고 편안한 삶을 우리는 추구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것 중 하나가 내 자신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지식이나 얘기를 나보다 모르는 사람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일방적으로 반복해서 하는 경우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필자의 경험으로 극단적으로 그런 경우는 피곤함을 넘어 폭력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필자는 직업상 통역을 해도 말을 해야 하고, 방송이나 강연을 해도 말을 해야 한다. 그런 경우는 필자로 하여금 무언가를 말 해야 하는 여건과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이외의 사적인 자리에서는 차라리 상대의 얘기를 듣거나 혼자 묵상하고 사색하는 것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 '혼밥', '혼술'이라는 이런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이제 이해가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삶은 결코 '홀로' 살 수 있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고 화합하면서 그리고 서로 인내하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래도 저래도 어차피 녹녹치 않은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피할 수 없다면 맞춰야 한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에게 조금씩이라도 양보하고 이해하고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상대가 내 입맛에 맞으면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맞춰주지 못하거나 나와 어우러지지 못하면 안 좋은 사람이라는 사고는 지나치게 유아적인 발상 아닌가. '혼밥'과 '혼술'은 가능하다. 하지만 '혼삶'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 아니겠나.

그러면 우리는 서로가 어떤 모습과 노력으로 살아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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