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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⑳ 2% 부족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고인 물 갈아야···"

최종수정 : 2018-07-03 15:28:31
지난달 10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담벽에 걸린 태극기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달 10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담벽에 걸린 태극기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끄트머리에는 한국 근·현대사 비극을 간직한 붉은 담벽의 옥사가 있다. 감옥은 1908년 일제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가두기 위해 세운 것으로 유관순 열사,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가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건립 당시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감옥은 증·개축을 통해 수용 가능 인원이 3000명까지 늘어났다. 개소 이후 80년 동안 약 35만명을 수감한 감옥은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됐다.

서울시는 숱한 민족 수난사가 배어 있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조성, 1998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문을 열었다.

◆독립운동가로 남은 친일 변절자

서대문형무소 전시관 2층 민족저항실에는 친일파 윤치호가 독립운동가로 표현된 전시물이 있다. 김현정 기자
▲ 서대문형무소 전시관 2층 민족저항실에는 친일파 윤치호가 독립운동가로 표현된 전시물이 있다./ 김현정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전시관과 중앙사, 11·12 옥사, 여옥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달 10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과거 보안과 청사로 사용됐던 2층짜리 전시관 건물이 보였다. 관람 순서를 따라 가장 먼저 건물 2층 민족저항실로 올라갔다. 전시실에서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날 역사관을 방문한 조길환(가명·56) 씨는 "왜 친일파 윤치호가 독립운동가로 나와 있는 거냐"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저런 잘못된 것들은 당장 치워야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윤치호는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조작해 비밀 결사조직 신민회 회원을 검거·고문한 105인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고 3년 만에 출소했다. 이후 그는 친일파로 변절, 일본 귀족원의 칙선 의원을 지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계자는 "105인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사람 중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들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어 윤치호 선생이 포함된 것이다"고 해명했다.

민족저항실을 둘러본 후 고문실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고문실은 물고문실, 임시구금실, 취조실, 지하 독방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지난 6월 10일 서대문형무소 전시관 지하 고문실에서 한 어린이가 수형도구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6월 10일 서대문형무소 전시관 지하 고문실에서 한 어린이가 수형도구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하 고문실에서는 머리에 짚으로 만든 용수(수감자가 앞을 볼 수 없도록 얼굴을 가리는 갓의 한 종류)를 뒤집어쓰고, 양 팔목에 수갑을 찬 어린이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수형도구 체험을 한 이준우(12) 군은 "앞이 안 보여 답답하고 두려웠다"며 "저 시대에 태어났어도 무서워서 독립운동을 못했을 것 같다"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지난달 10일 서대문형무소 전시관의 지하 고문실을 찾은 한 시민이 벽관 고문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달 10일 서대문형무소 전시관의 지하 고문실을 찾은 한 시민이 벽관 고문 체험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고문실 한켠에는 관 세 짝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벽에 서 있는 관의 정체는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가둬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고통을 주는 고문 기구였다.

마포구 합정동에서 온 김성태(45) 씨는 "몸을 잔뜩 웅크려 봤는데도 벽관에 들어갈 수 없어 포기하고 나왔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이 좁은데 갇혀 고생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여성독립운동가는 독립의 꽃?

지난 6월 10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옥사 내부를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6월 10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옥사 내부를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전시관 뒤쪽에는 방사형으로 뻗은 10·11·12 옥사와 연결된 중앙사가 있었다. 중앙사는 옥사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중앙사 감시실로 이동했다. 중앙감시실에는 나무 상자처럼 생긴 간수 감시대가 있었다. 해설사는 "모두 감시대 위로 올라와 옥사를 둘러보라"고 말했다. 감시대에 올라서자 일자로 길게 뻗은 옥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해설사는 관람객들에게 "이제 감옥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권했다. 3평 남짓의 공간에 어른과 아이 20명 정도가 들어가자 감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찼다.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온 김미경(53) 씨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 숨이 안 쉬어 졌다"면서 "일본이 여기에 30명을 가둬놨다고 들었는데, 오늘같이 습하고 더운 날은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여옥사 내부 시청각 자료에는 독립의 꽃 여성독립운동가 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김현정 기자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여옥사 내부 시청각 자료에는 '독립의 꽃 여성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김현정 기자

역사관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마지막 관람 장소인 여옥사에 도착했다. 여옥사는 미결수와 사형수 등을 가둔 장소로 1979년 철거됐다가 설계도면이 발견돼 지난 2011년 복원됐다.

여옥사를 방문한 김모(29) 씨는 "여옥사 안에 있는 시청각 자료에 '독립의 꽃 여성독립운동가'라는 문구가 매우 불쾌했다"면서 "남성독립운동가도 사람이 아닌 꽃으로 표현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여옥사 내의 또 다른 시청각 자료에서는 '고문을 당해 부은 얼굴로 찍힌 사진 때문에 유관순 열사가 부정적인 인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대체 누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냐"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관계자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른거다"고 짧게 답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월 시와 자치구가 추진하는 사업에 성역할 고정관념, 성차별적 요소 등이 담긴 사례를 점검하는 시민 성평등 모니터링단을 운영, 점검 내용을 사업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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