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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새벽을 여는 사람들]"집에 있으면 외로워 무료급식소 찾는 어르신들 보면 어머니 아버지 생각나"

6월 30일 오전 종로 천사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구서윤 기자



"집에 혼자 있으면 고독하잖아. 여태까지 자녀들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자식이 결혼하고 손주도 낳고 잘 사는데 날 보러 오지 않아. 허탈하지. 이제는 이런데 찾아와서 밥도 먹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낙으로 살다가 가지 않을까."(76세, 김모씨)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고령 사회에 진입한 나라. 49.6%의 노인 빈곤율로 OECD 회원국 중 1위. 초고령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인들에게 한 끼 식사로 소소한 행복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6월 30일 오전 종로 천사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구서윤 기자



지난 30일 종로구에 위치한 천사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오전 7시30분의 주말 이른 시간에도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노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박스를 바닥에 깔고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천사무료급식소는 일주일에 세 번 화·목·토요일에 노인을 대상으로 점심을 제공한다. 식사시간은 총 3차례로 나뉘어 11시에 약 157명, 12시에 약 157명, 그 이후에 오는 30~40명이 이곳에서 한 끼를 해결한다.

천사무료급식소에서 제공하는 식권. /구서윤 기자



1차의 정해진 인원이 다 차면 그 이후에 오는 사람은 노란색 번호표를 받고 2차 시간에 맞춰 입장한다. 1~2차까지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만난 천사무료급식소 종로센터장 정수미 대리는 "출근을 7시 30분에 하는데 그 때부터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아 8시부터는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시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식소 안으로 들어가자 '어르신은 우리의 소중한 보물입니다'라는 큰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종로 천사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이 식사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서윤 기자



8시에 안으로 들어와 급식소 테이블에 6~8명씩 옹기종기 자리잡은 어르신들은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웠고 내부는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최모(76)씨는 "여긴 토요일에도 밥을 준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주위에 외롭고 불쌍한 노인들이 많은데 이곳에 와서 수다라도 떨면 또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구서윤 기자



봉사자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구서윤 기자



그러는 사이 급식소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음식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하루에 약 35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종로 급식소의 직원은 단 2명. 부족한 일손은 자원봉사자로 보충하고 있다. 이날은 약 20명의 봉사자가 함께했다.

정수미 대리는 "토요일에는 봉사자가 많은 편이지만 평일 같은 경우엔 봉사자가 많지 않아 적은 인원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한다"고 말했다.

식사 준비를 끝낸 정 대리가 마이크를 잡고 "모두 주목해주세요"를 외치자 온 시선이 정대리에게 쏠리며 조용해졌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시작할까요? 구호 준비!"라고 말하자 노인들은 일제히 손을 들고 "공익성, 자발성, 선행, 선행, 선행합시다!"를 외치고 박수를 보냈다.

정수미 대리가 식판을 옮기고 있다. /구서윤 기자



이어 봉사자들이 정 대리의 지휘 하에 음식이 담긴 식판을 테이블로 분주하게 날랐고 트로트 음악과 함께 식사가 시작됐다.

식판을 깨끗하게 비운 어르신들은 나가면서 "잘 먹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등의 인사를 전했다.

봉사자가 음식을 나르고 있다. /구서윤 기자



이곳을 세 번째 찾았다는 박모(80)씨는 "설렁탕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고 말했다. 이어 "밥 먹으면서 고생하는 봉사자들을 보면 고마우면서도 기분이 이상하다"며 "모르는 사람들도 날 챙겨주는데 우리 애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직원의 눈을 피해 가져온 반찬통이나 비닐봉지에 남은 밥과 반찬을 싸가는 노인들도 간혹 보였다. 김치통을 들고 있는 기자를 향해 "여기 김치 좀 조금만 담아줘"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로급식소 조재심 주임은 "어르신들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몰래 싸간 반찬을 바로 먹지 않고 오래 지나서 먹는 경우가 있어 탈이 날까 봐 못 가져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수미 대리가 식사를 하러 들어온 어르신들께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구서윤 기자



어르신들의 식사가 모두 끝나고 청소까지 마친 후 1시가 다 되서야 직원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수저를 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분주하게 움직였던 오전 시간을 증명하는 듯했다.

양로원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다는 정 대리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또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런지 찾아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모두 제 어머니, 아버지 같다"고 말했다. 일하는 내내 "아버지 여기 차례대로 앉으세요" "어머니 꼭꼭 씹어서 드셔"라고 말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꾸준히 밥을 드시러 오는 103세 어르신이 항상 생각나는데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수미 대리는 오늘도 어르신들의 점심을 생각하며 고기를 삶고 청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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