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서울] ⑰ 궁 안에 숨겨진 비밀의 화원··· 창경궁 대온실
  • 플러스버튼이미지
  • 마이너스버튼이미지
  • 프린트버튼이미지
  • 카카오스토리버튼
  • 밴드버튼
  • 페이스북버튼
  • 트위터버튼
  • 네이버포스트버튼

[되살아난 서울] ⑰ 궁 안에 숨겨진 비밀의 화원··· 창경궁 대온실

최종수정 : 2018-05-22 13:28:24
창경궁 대온실이 지난해 11월 1년 3개월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했다. 김현정 기자
▲ 창경궁 대온실이 지난해 11월 1년 3개월간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했다./ 김현정 기자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하게 동향으로 배치된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에서 오른쪽 샛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궁에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색 철골로 둘러싸인 유리 온실은 1909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창경궁 대온실은 2013년 문화재청이 실시한 '국가지정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에서 목재 부식 등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돼 1년 3개월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다시 문을 열었다.

◆꽝꽝나무부터 팔손이나무까지

창경궁 대온실에는 모수에서 직접 채취해 키운 천연기념물 후계목들이 전시돼있다. 김현정 기자
▲ 창경궁 대온실에는 모수에서 직접 채취해 키운 천연기념물 후계목들이 전시돼있다./ 김현정 기자

"엄마, 이 나무는 이름이 꽝꽝이래요."

지난 20일 창경궁 식물원에서 만난 한 꼬마가 나무 앞에 있는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꽝꽝나무 옆에는 사람 손바닥처럼 생긴 이파리가 무성한 팔손이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초등학교(옛 국민학교) 동창들과 식물원을 찾은 박월선(75) 씨는 "나무랑 꽃을 좋아해 평소 식물원에 자주 오는데 이런 천연기념물들은 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면서 "친구들과 산책도 하고 희귀한 식물도 보고 일석이조"라며 즐거워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000년 이후부터는 국내 자생식물 위주로 전시해오고 있다"며 "천연기념물 후계목(모수에서 직접 채취해 키운 나무)을 전시해 창경궁 식물원만의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옆에는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생긴 파리지옥과 부부젤라 모양의 네펜데스가 있었다. 식충식물 네펜데스 안에 갇힌 개미를 본 아이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한 어린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연못 안에 있는 식물을 만지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한 어린이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연못 안에 있는 식물을 만지고 있다./ 김현정 기자

식충식물 구역에서 스무 발자국 정도 전진하면 양치식물 구역이 나타난다. 비늘고사리, 좀쇠고사리, 주저리고사리, 들토끼고사리 등이 심어져 있다. 잎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인지 애·어른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고사리를 만지고 잡아당겼다.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방문한 한 시민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손으로 고사리 만지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방문한 한 시민이 경고문을 무시하고 손으로 고사리 만지고 있다./ 김현정 기자

고사리뿐만 아니라 온실 내 많은 식물들이 매너 없는 관람객들로 인해 수모를 겪고 있었다. 식물원 곳곳에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푯말이 붙어있었지만, 사람들은 경고문을 무시하고 식물들을 괴롭혀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리소에서 자주 순찰을 다니면서 관람객들에게 '만지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있는데, 일부 관람객 중 '사람들 많은 데서 면박을 준다'며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려움이 있다"며 "다른 분들도 배려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코끼리랑 벚나무는 어디 갔나요?"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어르신이 50년 전의 창경원을 추억하며 식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20일 창경궁 대온실을 찾은 어르신이 50년 전의 창경원을 추억하며 식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날 식물원을 찾은 관람객 중에는 반세기 전 창경원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도 있었다. 성북구 정릉동에서 세 자매와 함께 궁을 찾았다는 조월자(73) 씨는 "지금은 여의도에서 벚꽃놀이를 하지만, 내가 20대 초반일 때는 사람들이 창경원으로 벚꽃놀이를 왔다"면서 "동생들은 여기로 소풍하러 와 동물원에서 코끼리도 보고, 식물원 구경도 하고 그랬다"며 추억을 회상했다.

조 씨와는 정반대로 창경궁 온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노원구 월계동에 사는 박모(72) 씨는 "일제의 잔재는 싸그리 다 없애야 한다"며 "일본이 만든 식물원이 왜 아직도 창경궁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이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제의 잔재를 전부 없애는 게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게 될 수 있다"며 "그 시대에 지어졌다고 해서 다 없애기보다는 역사적 의의나 배경,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문화유산을 존치할 것인지 폐쇄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창경궁 대온실은 1907년 일본 황실 식물원 책임자 후쿠바 하야토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해 1909년 건립됐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가둬놓고는 왕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었다.

일제는 한일합병조약 체결 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왕이 살던 궁궐은 벚꽃놀이, 불꽃놀이가 열리는 유원지로 전락했다.

창경궁은 광복 40여 년이 지나서야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1983년 창경궁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궁 안에 있던 위락시설인 동물원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고, 벚나무들은 여의도 윤중로로 옮겨 심어졌다.

창경궁 내 일제가 지은 건물을 모두 철거됐지만, 대온실은 대한제국 말기에 들어온 서양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4년 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 보존됐다.

창경궁 대온실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된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김현정 기자
▲ 창경궁 대온실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일제에 의해 창경원으로 격하된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김현정 기자

강북구 번동에서 온 채명국(58) 씨는 "아픈 역사지만 이렇게 건축물로 남겨 놓고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식물원 입구에 창경원 식물원의 가슴 아픈 역사 등을 적어 놓은 안내문이 없다는 거다"고 말했다.

채 씨는 "사람들이 식물원을 둘러 보면서 창경궁에 유폐된 순종의 심정을 헤아려보면 더 좋은 역사 교육의 장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종종 어르신들이 와서 과거 소풍 왔을 때 기억을 더듬어 '코끼리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그럴 때는 자료를 찾아서 따로 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창경궁 온실 앞에 건물 보수 이력을 전부 기술한 안내문을 따로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다"며 "관련 사항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너
daum
많이 본 뉴스
핫포토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