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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⑮ 서울 도심 한복판 무릉도원, '양녕대군 이제 묘역'

최종수정 : 2018-05-08 11:01:13
양녕대군 묘역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재실과 사당 지덕사가 나온다. 김현정 기자
▲ 양녕대군 묘역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재실과 사당 지덕사가 나온다./ 김현정 기자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2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10여 분을 걸어 내려오면 '양명문(讓名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한옥이 나온다. 한옥 대문을 열면 세종대왕의 큰형 양녕대군의 묘와 사당이 있는 '양녕대군 이제 묘역'을 만날 수 있다.

숙종 대왕은 1675년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이 아우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사양한 덕망을 기리기 위해 사당(지덕사)을 세웠다. 원래 남대문 밖 도저동에 있던 사당은 1912년 묘역이 있는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서울시와 동작구는 지난 4월 27일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출입을 제한해왔던 양녕대군 이제 묘역을 시민들을 위한 문화·휴식 공간으로 되돌려주기 위해 18년 만에 전면 개방했다. 지난 4일 찾은 양녕대군 이제 묘역은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연못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평화로운 무릉도원이었다.

양녕대군 이제 묘역 입구에는 명예를 사양한다 는 뜻의 양명문 讓名門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김현정 기자
▲ 양녕대군 이제 묘역 입구에는 '명예를 사양한다'는 뜻의 '양명문(讓名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김현정 기자

◆마을의 문화유산··· 주민 쉼터로

지난 4일 양녕대군 이제 묘역을 찾은 시민들이 대군이 초서체로 쓴 후적벽부가 새겨진 비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난 4일 양녕대군 이제 묘역을 찾은 시민들이 대군이 초서체로 쓴 후적벽부가 새겨진 비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양녕대군 이제 묘역은 동작구 상도동에 1만5281㎡ 규모로 조성됐다. '명예를 사양한다'는 뜻을 가진 양명문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갈래로 나뉜 돌길이 보인다. 왼쪽으로 가면 정원이, 가운데로 올라가면 양녕대군 묘역이, 오른쪽으로 가면 사당이 나온다.

왼쪽 돌길을 따라 올라가면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정원에는 5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석으로 만들어진 비석에는 묘역 성역화 약사, 양녕대군이 지은 한시, 대군이 초서체로 쓴 후적벽부 등이 새겨져 있었다.

상도동 주민인 장영자(62) 씨는 "당대 명필가답게 서체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며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씨는 "동네에 숨겨져 있던 문화유산을 영영 못 보고 지나칠뻔 했다"면서 "이제라도 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며 밝게 웃었다.

동작구 상도4동에 사는 한명순(74) 씨는 "묘역을 주민 쉼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게 정말 마음에 든다"며 "동네에 마땅히 산책할만한 곳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런 작은 공원이 생겨 너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동작구 관계자는 "이 지역에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공원 부지가 부족해 양녕대군 이제 묘역을 개방하게 되었다"면서 "문화행사를 진행해 주민들을 위한 휴식·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녕대군의 묘소 앞에는 장명등과 묘비,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김현정 기자
▲ 양녕대군의 묘소 앞에는 장명등과 묘비,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김현정 기자

묘역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를 합장한 묘소가 있다. 묘소 앞에는 장명등과 묘비, 좌우로 2기씩 총 4기의 문인석이 세워져 있었다.

장명등은 묘 앞에 불을 밝히는 등으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사찰과 왕릉 앞에 세워 두는 석물이다. 능을 지키는 수호물 문인석은 묘소 앞에서 내시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왕을 경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분당구 구미동에서 온 이효수(83) 씨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묘소에 와서 조상님을 직접 찾아뵙게 되어 기쁘다. 조선 왕조의 후예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일반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지역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당도 재실도 출입금지··· "전면 개방 맞나요?"

지덕사 사당 에는 양녕대군의 위패와 숭례문 현판 탁본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한 시민이 굳게 잠긴 사당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지덕사(사당)에는 양녕대군의 위패와 숭례문 현판 탁본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한 시민이 굳게 잠긴 사당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김현정 기자

묘소를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지덕사라는 사당이 나온다. '지덕'이란 인격이 덕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양녕이 동생 세자에게 자리를 양보한 행적이 고대 중국 주나라의 태백과 같다는 의미에서 세조가 친히 명명했다.

사당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와 후적벽부 팔폭병풍 초서체 목각판, 숭례문 현판 탁본, 지덕사기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들어갈 수 없었다.

이날 사당 앞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관람객이 "여기는 뭔데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것이냐"고 따져 묻자 지덕사 관리자는 "거기는 아직 개방이 안 되어 있는 곳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재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도광재 역시 출입이 금지돼 들어갈 수 없다. 김현정 기자
▲ 재실(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도광재 역시 출입이 금지돼 들어갈 수 없다./ 김현정 기자

지덕사 사당 내에 있는 서고와 창고인 제기고 뿐만 아니라 사당 오른쪽에 있는 재실(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도광재 역시 출입이 금지돼 들어갈 수 없었다.

중랑구 신내동에서 온 김관섭(81)씨는 "죽기 전에 사당 안에 있는 지덕사기를 두 눈으로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들어갈 수 없게 해놨다"며 아쉬워했다. 김씨는 "역사 교육을 위해서라도 가급적이면 다 개방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사당은 제사 때 이용되는 곳이라 개방하지 않았다"면서 "동작구에서 지덕사 측과 협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양녕대군 이제 묘역 입구 앞 표지석에는 광산 김씨인 양녕대군 부인이 광주 김씨 라고 잘못 쓰여 있다. 김현정 기자
▲ 양녕대군 이제 묘역 입구 앞 표지석에는 광산 김씨인 양녕대군 부인이 '광주 김씨'라고 잘못 쓰여 있다./ 김현정 기자

한편, 강동구 상일동에서 온 서창식(65)씨는 "입구 앞 표지석에 양녕대군 부인을 '광주 김씨'라고 잘못 적어놓았다"며 "학생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안내문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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