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서울] ⑬ 종로구 창신동에 피어난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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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⑬ 종로구 창신동에 피어난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최종수정 : 2018-04-24 11:21:19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2층 전시실 벽면에는 수십 개의 액자가 빼곡하게 걸려 있다. 김현정 기자
▲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2층 전시실 벽면에는 수십 개의 액자가 빼곡하게 걸려 있다. / 김현정 기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22세 청년 전태일은 이 짧은 몇 마디를 남기고는 근로기준법이 담긴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했다.

봉제 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성장에 가려진 60~70년대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봉제 노동자들은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작업장에서 폐병에 걸릴 정도로 많은 먼지를 마셔가며 일했다. 전태일 열사는 죽음으로 봉제 산업장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했다.

서울시는 약 반세기가 흐른 지난 11일 우리나라 봉제산업을 이끌어온 종로구 창신동에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을 세웠다. 봉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봉제인들의 자긍심을 높여 청년들이 봉제 산업에 유입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이 천을 이어 옷이 되듯, 서로 이어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이다.

◆60~70년대 봉제로 집안 일으킨 여공들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 끄트머리에 위치한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김현정 기자
▲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 끄트머리에 위치한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 김현정 기자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주택가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아담한 회색 건물이 나타난다.

외벽을 실로 둘둘 감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이다. 이음피움은 창신동 골목 끄트머리에 지하 1층~지상 4층, 연면적 499.12㎡ 규모로 조성됐다.

지난 15일 봉제 역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전시관 벽면에는 수십 개의 액자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액자 안 사진 속에는 봉제 산업 역사상 크고 작은 중요한 사건의 현장이 담겨 있었다.

소방 호스로 건물에 난 불을 끄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1911년 3월 25일 뉴욕 맨해튼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을 찍은 사진이었다.

공장 관리자가 노동자들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비상구 문을 잠가 2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내에선 최악의 산업재해로 손꼽히며 당시 봉제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착취 현장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됐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온 이미숙(65) 씨는 "여기 오니까 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언니가 올해 76살인데 평화시장에서 봉제일을 해 동생들을 가르쳤다"면서 "여기에서 재봉하는 사람들은 창신동 꼭대기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쓰면서 고생하며 살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계단을 통해 한 층 위로 올라갔다. 봉제 마스터 기념관에는 봉제 장인 10인의 모습과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전시관 천장에는 봉제 장인들이 직접 만든 7벌의 의상이 옷걸이에 걸려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김현정 기자
▲ 전시관 천장에는 봉제 장인들이 직접 만든 7벌의 의상이 옷걸이에 걸려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김현정 기자

전시관 왼쪽에는 이들이 작업에 사용했던 가위 10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가위들은 3~4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성북구 정릉동에서 이음피움을 방문한 윤종문(57) 씨는 "옛날에는 봉제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면서 "그때 미싱 시다(보조)로 일하면서 힘들게 살아온 봉제인들의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기념관 오른쪽에는 봉제·패턴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낯익은 쪽가위와 초크에서부터 이름조차 생소한 노루발과 문진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시관 천장에는 봉제 장인들이 직접 만든 7벌의 의상이 옷걸이에 걸려 빙글빙글 돌아갔다. 실루엣 원피스, 라이더 재킷, 테일러드 재킷, 셔츠 원피스 등 봉제 마스터들의 작품을 통해 올봄 패션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다.

◆이음피움, 이름값 할 수 있을까?

이음피움 3층 봉제 마스터 기념관에 전시된 장인들이 쓰던 봉제 소품들, 9점밖에 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김현정 기자
▲ 이음피움 3층 봉제 마스터 기념관에 전시된 장인들이 쓰던 봉제 소품들, 9점밖에 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김현정 기자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져서였을까. 홍보 부족일까. 이음피움에는 소위 말하는 '오픈 효과(개장 초기 집객 효과)'가 통하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10분을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 곳곳에 이정표가 없어 위치를 찾기가 어려웠다.

전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3일에는 27명이 14일에는 35명이 이음피움을 방문했다. 개관 첫 주말인 15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관람객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내 손안에 서울'과 같은 서울시 홍보 매체와 버스 광고, 해외 매체 등을 통해 이음피움을 홍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5월에는 주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며 패션 관계자들과 연계한 행사와 이벤트, 워크숍 등을 진행해 관람객들의 방문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간이 협소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온 이모(32) 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볼 게 별로 없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봉제인들이 사용하던 물건이나 장인들이 직접 만든 옷들도 좀 더 보고 싶은데 장소가 좁아 예고편만 보여주고 끝낸 느낌이 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시 관계자는 "동네 주변에 앵커시설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 시는 작은 박물관, 거리의 박물관, 주거 공간에 있는 박물관을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독일 베토벤 박물관은 이 보다 더 작은 규모로 운영된다"며 '작지만 강한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콘텐츠를 계속 발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창신동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이음피움에 방문해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무리 중 한 명은 "하루종일 옷 만들고 나왔는데 박물관에 가서 또 보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이 이름처럼 사람들 사이를 잇고 소통과 공감을 피우기 위해서는 봉제업 종사자인 지역 주민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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