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 문화예술행정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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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 문화예술행정의 수준

최종수정 : 2018-01-21 14:49:03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문화예술을 경제적인 잣대와 행정편의로만 접근하는 사례는 국내에 드물지 않다. 때론 자의적으로, 혹은 시민들이 조금만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철거해버리는 행정 관계자들의 예도 흔하다.

지난 2007년 작가 이반 씨는 통일부 의뢰로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만해 한용운의 생명사상 등을 담은 14점의 벽화를 설치했다. 하지만 정부는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역의 분위기와 맞지 않다'며 해당 벽화를 일방적으로 철거 및 소각해버렸다.

작가는 거세게 반발해 소송에 나섰다. 그리고 2015년 8월 대법원은 "원작자 동의 없는 예술작품 폐기는 위법"이라며 "국가가 이씨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13년 3월 세계적인 건축가로 꼽히는 리카르도 레고레타(멕시코, 작고)가 남긴 마지막 건축물인 제주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더 갤러리)'가 모 기업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멕시코 정부와 건축학계는 물론 시민들까지 나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아시아 유일의 작품이라며 철거를 만류했지만 불법건축물, 해안 조망 등의 이유를 내세운 행정과 기업의 방침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더 갤러리'는 무너졌다. 그 자리엔 호텔이 세워졌다. 이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철거한 기업과 제주도는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구 제주대학 본관 건물을 철거(1995년) 한 경력(?)을 갖고 있던 제주도는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이 안일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지한 행정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최근에도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구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2010년 설치된 데니스 오펜하임(미국, 작고)의 유작 '꽃의 내부'를 유족도 모르게 철거 및 폐기해 커다란 논란을 낳았다.

작품을 관리해온 해운대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 측은 부식과 민원 제기를 폐기의 이유로 들었다. 바닷가에 있다 보니 훼손 정도가 심했던 데다가 대중성이 낮다는 일부 주민들의 요구가 작품을 내다 버린 배경이었던 것이다.

허나 해운대구청의 처사는 반문화적이자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야만적 행정의 한 사례다. 본래 있던 장소에서 이동하는 것도 작가나 유족의 의견을 거쳐야 하는데, 심지어 저작권자와도 상의 없이 분해해버린 것은 작품을 가로등이나 환기구마냥 단순한 시설물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민원을 철거의 이유로 삼았지만 이 또한 납득하긴 어렵다. 공공미술 작품은 공공의 재산이고, 주인은 시민 모두이다. 따라서 정 철거해야 했다면 그에 합당한 공공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그런 절차 없이 일부 민원의 말만 수용해 세계적인 작가의 유작을 부숴버렸다.

1970년대 뮌스터 시(市)는 시민들이 조지 리키와 헨리 무어의 작품에 반감을 갖자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문화계 관계자들까지 적극 나서 예술작품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담론으로까지 이끌었다. 오늘날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로 거듭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뮌스터의 예는 우리에게 너무 먼 얘기다. 한국 문화행정가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란 유치찬란한 지역 토산품을 상징하는 조형물 앞에서 지들끼리 모여 희희낙락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해도 미술감상이나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은 적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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