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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10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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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따르릉!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하게 시렸다. 스무 해 전의 자명종 시계! 시들하던 보일러가 서비스 수리를 받고 쌩쌩 돌아가던 엊그제, 자명종 소리가 뜬금없이 왜 그리 듣고 싶던지. 녀석도 새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 멀쩡하게 돌아갈까? 나는 그런 일말의 희망을 걸고 그 잊힌 녀석을 서랍 속에서 기어이 찾아냈다. 초침은 돌아갈까? 긴 세월 녹슬어 미동조차 않을까? 과연 어떻게 전개할지, 드라마틱한 그 예측불허의 초침향방에 마음 졸여보긴 처음이었다.

소마소마했다. 새 건전지 하나를 장착할 땐 찌걱거렸다. 그게 아까부터 불안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초침이 잘도 돌아간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동!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재깍재깍! 소리도 힘차다. 알람 시간에 이르자 따르릉! 법석을 놓는 건 예전처럼 여전하다. 그런데 울대가 쉬어 잠겼다. 안쓰럽고 측은했다. 한 고개 한 고개 까닥까닥 오르내리는 초침이 힘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숱한 고락을 함께 호흡해온 초침의 숨결. 갑자기 녀석과의 추억이 밀물져왔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녀석은 내 삼십대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아침을 여는 게 녀석의 직무라지만 소리가 너무 컸다. 새벽녘마다 팡파르를 울러댔다. 요즘처럼 밤이 길고 추운 날, 절절 끓는 방바닥에 노글노글해진 몸이 어디 쉬 일어나려 하겠는가. 그러나 어쩌겠나. 뉴스거리를 찾아 누구보다 일찍 눈을 떠야하는 게 숙명인 것을. 녀석은 내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고 세상을 읽게 했다. 그리곤 내일의 아침을 기약하며 재깍재깍 숨을 고른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녀석은 살림 목록의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물 같은 존재였다. 그 보물을 고른 건 아내였다. 믿음직한 소리 하나만 믿고 콕 집어냈다. 녀석을 상전 모시듯 안방 탁자 위에 앉혀뒀다. 듬직했다. 신기하게도 알람 소리는 매번 다르게 들렸다. 기분이 산뜻한 날엔 리드미컬했다. 톤이 높긴 해도 부드러운 음색이 묻어났다. 침울할 땐 쇠붙이 소리가 끼어든다. 소음이다. 추적거리는 비와 합창하는 날엔 처연하게 들렸다. 소리에는 삶의 감정전선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애칭은 10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딱 요맘때, 아침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평소처럼 좀 여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신문사 복도 앞 벽시계는 회의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녀석이 10분 늦게 잠을 깨운 것이다. 어째 알람 소리가 영 시답잖게 울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긴 했다. 건전지 약발이 흐려진 틈을 타 며칠 새 늑장을 부렸던 거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녀석에게 그 전말을 물어볼 수도 없지만 매일 시나브로 수초씩 갉아 먹었을 것이다.

애초에 손목시계를 차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요즘처럼 시간을 띄워주는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모를까. 녀석 입장에선 우리 내외는 미련 곰탱이였다. 세상을 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1초의 가치를 허투루 보지마라고 녀석은 말하고 있었다. 10분의 시간이 갖는 삶의 보폭! 그 너비를 절감했다. 그날 이후 녀석을 10분이라고 불렀다. 내친 김에 녀석을 10분 앞질러 세상을 달려가게 했다. 깨어나는 시간이 10분 더 빨라진 것이다. 아니다. 그건 10분의 여유였다.

그 역발상이 우리 내외의 삶 패턴을 확 바꿔놓았다. 10분 앞당긴 생체 리듬의 시계. 10분 더 일찍 일어나는 눈금에 맞춰 놓으면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은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생활 활력소가 10분간 재충전되는 것이다. 그 가치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일에 대한 추동력, 창의력, 열정. 능률이라는 삶의 샘물이 솟아나서다. 우리 집 거실에 걸린 둥근 벽시계는 늘 10분을 앞서 달린다. 보물 같은 자명종이 대물림해준 지혜, 기적의 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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