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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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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첫 해가 불쑥 떠올랐다. 나는 새해가 되면 운동회의 달리기를 상상하곤 한다. 하얗게 줄친 출발선에 발을 굳게 내디뎠던 그 맹랑한 모습을. 새로운 시간과 스치는 시간과의 맞바람 속에서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헐렁한 운동화의 끈을 꼭꼭 동여매며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눈빛은 또랑또랑 빛났다. 전력 질주할 태세였다. 목표 지점은 가마득했지만, 마음은 벌써 결승 테이프에 달려가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 출발 신호가 메아리치면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그렇게 한해를 달려갈 달력을 바라본다. 365일 코스. 그 출발선 앞에 서면 매년 그랬듯이 설레고 긴장된다. 이제 이골이 나서 무덤덤할 만도 하련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여전히 나를 흔든다. 굽이치는 쉰 두 개의 주일을 거쳐, 스무 네 번의 절기 변화와 네 번의 광활한 계절을 지나, 열두 산맥을 넘어야 하는 대장정! 달력 속에 펼쳐진 하루하루의 백넘버들을 어루만져 본다.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박동치지 않는 날짜들이 없다.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날들이다.

새해는 이리 가슴 벅차게 밝아왔다. 새해의 커튼을 여는 초읽기에 들어갔을 땐 한 초 한 초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금쪽같은 시간을 실감했다. 삶을 가꾸고 꽃피우게 할 살아 있는 세포들이니 그럴 것이다. 아, 이렇게 눈으로 보고서야 시간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스친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선 그 총량의 무게가 다르고, 시간 세포에 온도차가 있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삶의 질이 달라질 거라는 것을.

동산에 올라 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해는 태생적으로 신비하다. 매 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네 마음을 읽고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일 게다. 희망으로 보면 희망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삶이 팍팍할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에너지를 얻고자함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전국의 일출 명소마다 수십만 명이 북적거렸더랬다. 찌든 일상을 불태우고 새 소망을 축원했으니 해에게서 희망을 보았을 게다.

시작이라는 출발에는 종착역이 있다. 사람들은 새 아침에 저마다의 종착역에 간판을 내걸었을 터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가치들이다. 며칠 전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혼밥을 하면서 그 하나를 건졌더랬다. 음식점은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진 좁은 골목 안쪽에 들어앉아 있었다. 메뉴는 서너 종류가 보였다. 냉큼 부대찌개를 주문했는데, 이 가게 간판 메뉴여서 만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푸푸 끓으며 군침을 돌게 한 그것이 강력 추천하고 있었다.

반찬이 나오기에 부대찌개도 곧 등장하겠거니 생각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째 올라오면 옆 테이블처럼 군침 돌게 끓일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일찌감치 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웬걸 뚝배기를 내놓는다. 잘못 가져왔나? 싶었는데 주인아저씨가 주문한 부대찌개란다. 주방에서 직접 끓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오래 달궈졌는지 뚝배기는 보글보글 맛깔스럽게 끓고 있었다. 순간 잠시 허탈에 빠졌던 미각이 되살아났다.

맛이 기가 막혔다. 뚝배기와 부대찌개. 특정 요리를 이런저런 용기로 끓이라는 법은 없지만 부대찌개 하면 아무래도 무쇠 뚜껑이나 양은 냄비가 떠오른다. 이 상식을 깬 뚝배기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뚝배기는 어떤 요리든 품을 줄 아는 큰 그릇이었다. 그 포용력으로 부대찌개를 웅숭깊은 새로운 맛을 창출했던 거다. 마음씨 역시 따뜻하고 포근했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가락까지 변함없이 온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새해 내가 뽑은 최고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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