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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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찐빵

최종수정 : 2017-11-29 08:00:00
김주식 언론인·세태평론가
▲ 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내 눈이 변덕스러운 걸까? 한동안 단풍 풍경에 젖어 있던 내 시선은 얼마 전부터 뜨뜻한 김이 모락거리는 것들에 자꾸 쏠린다. 가을철 내내 눈에 띄지 않던 뜨끈한 어묵과 가락국수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색 바랜 낙엽이 펄펄 내리던 가로수 길옆 찐빵 집도 허연 김을 퍼내고 있었다. 계절 대목을 맞아 후끈 달아오른 커다란 양은솥! 입이 함지박만 해진 아주머니가 솥뚜껑을 열어젖히자 뜨거운 김이 확 밀려오는 게 찐빵이 저토록 뽀얗다.

솔직히 찐빵의 맛 차이를 잘 모른다. 부드러운 팥소와 쫄깃한 식감을 내는 비법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내겐 이 세상 모든 찐빵이 다 맛있다. 어쩌면 추억의 맛으로 먹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추억의 찐빵에는 포만감, 웃음, 친구, 이웃, 이야기 같은 질료들이 버무려져 있다. 아련한 이런 추억이 행여 잊힐세라 그 흔한 찐빵이 늘 허기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김이 풀풀대는 찐빵!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열기가 입안을 훅하고 퍼지며 잠자던 추억이 깨어난다.

예닐곱 살 때였을 것이다. 낙엽이 뒹굴던 신작로 옆 공터에 무슨 잔치가 열렸더랬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걸 보면 결혼식 피로연 같기도 하다. 복닥거렸다. 가마솥이 대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은 개중 하나에 꽂혔다. 두 개의 돌 위에 걸려 있는 거무죽죽하게 그은 가마솥! 투박한 솥은 마치 기차가 먼 길을 달려와 이제 막 종착역에 도착한 것처럼 숨을 고르며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솥뚜껑 개봉을 기다리며 침을 꼴딱거렸다.

드디어 솥뚜껑이 열리자 자욱한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수년 전 새벽녘 잔잔한 호수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그 김이 오버랩이 됐다가 사라짐을 느꼈다. 김이 모락거리던 찐빵은 아이들 마음만큼 부풀어 있었고, 아이들 수만큼 많았다. 하얗고 둥그스름한 게 어른 손바닥 크기만 했다. 때 묻은 손에 고스란히 전해진 찐빵. 그 뜨거운 찐빵은 식을 때까지 손바닥 위에서 공중제비를 해야 했지만,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꿀맛이었다. 눈빛마다 포만감과 행복감이 그렁거렸다. 그 눈빛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엔 그랬다.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 세태는 맛 표현을 입으로 하지만 그 시절엔 눈빛으로 말했더랬다. 누군가 맛있니? 물어오면 아이들은 안달이 난 그 궁금증까지 속으로 삼켰다. 맛있다! 소리만 들어도 덩달아 배부를 것 같은 그 감탄조의 느낌 한마디를 애써 표출하려 들지 않았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건 옳은 얘기이기도 했고, 그른 판단이기도 했다. 느낌표가 그렁거리는 그 눈빛이 대놓고 맛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외려 그 느낌표에 담긴 맛을 캐내느라 더욱 꼴딱거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 들어 찐빵 냄새가 그렇게 향수를 자극할 수가 없다. 한입 베어 물 때 풍겨오는 찐빵만이 지닌 독특한 냄새, 어릴 적에 이게 뭐지? 킁킁거렸던 밀가루 익은 냄새다. 찐빵을 먹을 때마다 그 냄새를 더듬곤 한다. 추억을 먹는 것이다.

한갓진 시골길을 걷다가 찐빵 집이 불쑥 나타나면 반갑고 고맙다. 걸음을 떼지 못한다. 김이 모락거리는 낡은 양은솥이 정겹게 다가온다. 동네 아이들이 그곳에서 수런댄다면 왠지 낯설지 않는 이야기가 꽃필 것만 같다. 야! 뜨끈한 찐빵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배고팠나보구나 한 개 더 줄 테니 뜨뜻할 때 많이 먹어 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겨울 무드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찐빵 집은 언제나 이런 추억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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