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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⑤인터넷 속도 1위, 삶의 질은 47위…갈길 먼 '노동 존중 사회'

최종수정 : 2017-11-19 18:03:21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 동상 앞에서 전태일에게 노동조합을 1113인 사회적 선언 기자회견 을 하고 있다.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시스
▲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가 13일 오전 서울 종로 전태일 동상 앞에서 '전태일에게 노동조합을! 1113인 사회적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조하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뉴시스

#1. 중소기업에 다니는 오영심(27·여·가명) 씨는 공무원 준비를 고민하고 있다. 오씨는 "회사 생활에 만족하지만, 나중에 결혼한 이후가 걱정된다"며 "출산 휴가 기간이 여섯 달에 불과해, 3년 이하로 보장받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2. 경기도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이모(59)씨는 동료들의 처지가 딱하다. 이들은 부도난 하청업체 몫이던 수수료를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보전해 주겠다던 시공사가 약속을 미뤄, 일주일 가까이 현장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이씨는 "나 역시 언제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각종 지표에서 선두를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그 성과를 일군 시민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포용적 성장의 조건은 양육도 일종의 노동으로 보는 기업 문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문화 개선이라는 설명이다.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세계속의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과 삶의 질 지표는 OECD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5년 57.9%로 OECD 31위, 출산율은 1.26%로 세계 166위다.

연간 노동시간은 같은해 2113시간으로 3위를 기록했지만, 삶의 질은 2014년 40위보다 7계단 떨어진 47위로 추락했다.

시간당 근로보상증가율 역시 2014년 27위로 전년 대비 25단계 하락했다. 정보통신기술(IT) 발전지수와 인터넷 속도가 1위를 차지한 점과 대비된다.

"아이 낳기가 두렵다"는 오씨가 처한 문제는 육아휴직 이후 직장복귀율과 관련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월 펴낸 '노동리뷰'에 따르면, 2002년도 육아휴직이 끝난 이들 가운데 1주일 후 동일직장에 복귀한 노동자 비중은 같은해 92.5%였다가 2011년 71.4%로 저점을 보인 이후 2014년에는 73.8%를 기록했다.

반면 1년 뒤 고용유지율은 대폭 줄어들었다. 직장에 복귀하고 1년이 지난 뒤 동일 직장 고용유지율은 2002년 60.0%, 2010년 47.4%였다가 2014년 56.6%를 기록했다.

제도개선 영향으로 고용유지율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육아휴직을 사용한 노동자 가운데 절반을 조금 넘는 사람만이 1년 뒤 같은 직장에 남는다는 의미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같은 책의 '일·가정 양립지원제도의 노동시장 효과'에서 "육아휴직을 돌보는 노동이 아닌 '쉬는 것'으로 인식하는 회사와 동료의 시선이 장애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육아 하기 어려워 휴직을 했으니, 복귀 이후의 업무환경도 같을 경우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생활을 해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시차출퇴근제 같은 유연근무제 도입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같은 시간대에 함께 얼굴을 봐야 하는 관행 때문"이라며 기업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육아휴직이 남성의 직업적 성공을 방해한다고 믿는 문화 역시 고쳐야 할 점이다. 지난해 기준 여성 육아휴직자는 9만14명인데 반해 남성의 경우 4999명만이 육아휴직을 이용했다.

경영자의 마음가짐 변화와 유연근무제 활용, 대체인력 보유, 동료의 업무 분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보육 체계 개선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문화 조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녀의 질병 같은 불확실성에 공적으로 대응할 체계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씨가 처한 불안한 노동 환경 역시 포용적 성장의 걸림돌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19만3536건(27만8494명)이던 임금체불 신고는 지난해 21만7530건(32만5430명)으로 꾸준히 올랐다. 신고된 금액 역시 같은 기간 1조874억원에서 1조428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선성장 후분배 논리의 이면이다. 상호 계약으로 맺어지는 노사 관계를 봉건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사용자, 자유주의를 이해하기도 전에 돈으로 감정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진 점 역시 노동자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의 배경이라고 학계는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로 노동존중사회 기본계획 수립 ▲체불임금 제로시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노조 가입률 증가 ▲위험 외주화 방지와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을 포함한 11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노동계는 새 정부의 성과연봉제 폐기 지침과 양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폐기 정책, 공공부문에서 진행중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기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10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노동중심 임금·소득주도 성장에 엔진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와 관련,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노동 천시 문화와 직결된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본부장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여러 가지 왜곡 때문에 노조가 '빨갱이' 혹은 이기주의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에서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노조가 노동자의 당연한 활동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한 노동교육을 학교는 물론 성인 대상으로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대화기구 운영에 대해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정상화에 너무 목매달지 말고, 국회나 임의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며 "중앙 뿐 아니라 지역이나 업종 단위로 중범위 수준의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해, 궁극적으로는 사회협약으로 나아가는 경로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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