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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난해한 현대미술, 어떻게 이해할까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미술자체는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으나 사용하는 미술언어는 지역, 문화, 사회, 역사, 구성원들 간 공통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에 현대미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눈높이와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으므로 관람객이 느끼는 현대미술에 대한 난독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잣대를 적용하기 곤란할 만큼 다원화된 시대에서 어떤 게 예술이고 사물인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효과적이지 못한 결과를 얻기 일쑤다. 무가치한 예술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해 가치로 둔갑시키는 자들을 비난할지언정 모든 것이 ‘초미적’으로 변해버린 현상까지 부정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근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미의 과도함으로 인해 미술의 미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대중의 무관심에 불을 지핀 예술생태에 허탈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예술이 있기에 되레 예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당대 미술은 끊임없이 융합되고 결합되며, 해체되면서 동시에 구축된다. 이것이 진화인지 아닌지, 진보인지 퇴보인지의 여부는 나중의 문제다.

중요한 건 동시대미술은 더 이상 유일성이나 원형, 본질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것과 저급한 것, 엘리트와 대중 간 거리감의 생성과 층위를 의미 없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예술적 도그마가 살아 숨 쉬던 10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절대적인 것도, 시공간의 분별, 역할의 구별조차 무의미하긴 매한가지다.

물론 ‘예술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라는 메를로 퐁티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미술 또한 인간 삶의 텃밭인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인 틀에 안주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동적이다. 국가주의, 통합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획일적 맥락은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 탈주의 맥락에는 공동체의 의식을 반영한 제도, 상품, 자본, 노동 등 인간 삶을 지배하고 포획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다만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을 숙주로 삶과 이미지가 복잡하게 교차한 채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는 상황에서도 예술주체의 평등화는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다. 실제로 동시대미술에서 관람객은 겉으로나마 작가와 동일한 위치에 서길 요구받는다. 그들은 예술가로부터 이양된 예술행위와 가치구분의 당당한 중심이지 변방이 아님이 강조된다. 최소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창출하는 주어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타자의 개입과 개방성,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 아래 다양하게 겹쳐지며 통합이 아닌 차이를 이어나간다. 선을 넘나드는 탈경계화와 융복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새로운 모더니티를 창출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 모더니즘이 온 유럽에서 창궐할 당시 예술가들이 주안점을 두었던 재현과 구현의 대상인 현실은 물론, 오랜 시간 인식을 지배해온 이성과 진리조차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기구조주의로 대변되는 탈근대, 즉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갖춰진 온갖 형태로부터의 일탈이자 오늘날 미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술의 역사상 그동안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형식은 이제 미적 경험의 우위에 서지 않는다. 미적체험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획득하는 시대에서 형식이란 그저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개체별 삶이 투사된 미적 경험의 연속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를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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