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지하철의 가을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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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지하철의 가을 풍경화

최종수정 : 2017-08-30 08:00:00
김주식 언론인·세태평론가
▲ 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벌써부터 가을을 타는 걸까.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 까닭모를 공허함이 밀려든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바통 터치가 한창이던 저물녘, 나는 그 환절기를 피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지하철도 그 공허함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무성격(無性格) 계절이라는 환절기!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린다. 당장 천장의 에어컨이 힘들 게 생겼다. 여름과 가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그 착한온도를 추적하며 연신 내뱉는 에어컨 바람이 허탈하다.

그 황금비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거니와 같은 사람이라도 하루 일과를 연소하는 부피에 따라 그때그때 체감온도가 다른 것을. 오락가락하는 환절기의 몸짓. 차창 너머로 스치는 실루엣을 바라보며 이런 삽화를 그려본다. 지하철 속에는 사계절의 사연들이 다 있을 거라는, 그래서 맑고, 흐리고, 개고, 때론 비바람이 불고, 그 뒤에 찾아오는 화창한 삶의 무늬들이 그려진 삽화. 지하철에는 다양한 삶의 기상도(氣象圖)가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그래서다. 지하철에 오르면 삶이 실감난다. 저마다 짊어진 삶의 밀도가 앉아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거나, 스마트폰에 열중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들여다보거나, 차창으로 보이는 자신을 응시하며 행선지를 향해 달려간다. 그 모습 이면에는 나름의 꿈과 희망이 배어 있다. 종점을 향해 내닫는 지하철의 모습은 삶의 궤적에 다름 아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이 지하철은 서너 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졌다. 왁자지껄도 잠잠해졌다.

침묵은 잠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천장의 스피커가 돌연 정적을 깨고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힘들지 않았느냐며 가라앉은 기류를 환기시키더니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비행기 기장의 말투! 순간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뻔 했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귀를 쫑긋거렸고, 더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짧고 명료한 멘트였기에 여운은 길었다. 고단한 사람들에겐 따스함이 밀물져 왔을 것이다.

정말 뜻밖인 것은 이런 깜짝 친절들이 널렸는데도, 우리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는 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범속한 일상에 묻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마운 친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호젓한 갈림길에서 만나는 안내 표지판,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카트를 잡아주는 아르바이트생, 보도 위의 껌을 떼어내는 환경미화원, 문을 열어주고, 닫히려는 문 잡아주기 등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수고로움의 가치를 부여할 틈조차 없이 부지불식간 스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래서 묻게 된다. 서비스를 받는 것에 너무 중독된 탓에, 혹여 친절에 대한 가치판단이 무뎌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친절을 베푸는 법부터 배우라고. 그 출발은 베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일러준다. 그런 눈과 가슴을 가지라는 것인데 안내 표지판으로 서 보고, 커트를 잡아주고, 껌을 떼는 마음이 되어 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친절이란 외투를 입으면 세상에 참 곱고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사랑이 담긴 친절들은 그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역을 나와 동네로 들어가는 초입. 공원의 넓은 빈터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친절이 여름 봉사활동을 막 끝내고 철수하고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나절엔 그늘막이 돼주었고, 장마 땐 비가림막 역할을 해줬던 천막. 그 고마운 천막이 석양빛을 모로 받으며 하염없이 걷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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