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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옥수수가 삶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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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그 많은 여름철 먹거리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름을 올리는 게 있다. 갓 쪄낸 옥수수! 탱글탱글한 누런 알맹이들이 쫄깃쫄깃 차진 식감이 여간 아니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배어난다. 먹는 방식도 변한 게 없다. 우두둑 뜯는가 하면, 한 알 한 알 톡톡 떼어 알알이 감칠맛을 느끼기도 하고, 더러는 알맹이들을 손바닥에 모아 한입 가득 털어 넣곤 한다. 찐 옥수수 하나로 이렇게 입맛 당기는 대로 원초적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또 있을까 싶다.

계절은 벌써 입추(立秋)를 지나 초가을을 노크하고 있음일까. 여름 장마가 못다 한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비에 씻긴 산들바람이 스산하다. 이런 계절의 변주곡이 번지던 엊그제, 왜 옥수수가 그토록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장맛비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처마 밑에서 뜨끈뜨끈한 옥수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던 추억이 자꾸 겹치니 말이다. 비 오는 여름 끝자락에서 맛보는 농익은 옥수수에는 이런 향수와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서성거린 곳이 동네 전통시장. 찰옥수수는 솥단지 위 쟁반에 앉아 허연 김을 모락거리며 추억의 냄새를 저만치서부터 풀고 있었다. 노릇노릇한 게 침이 절로 괴었다. 하지만 정작 손에 들린 것은 찐 옥수수가 아니라 껍질이 달린 생 옥수수였다. 그것도 한 자루씩이나 사게 된 건 좌판 위에 수북한 자루 더미의 일각을 처리해주고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다. 껍질을 까서 솥에 쪄내는 수고로움을 들여 옛 향수를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였다.

잘 익은 옥수수. 베란다 통유리 밖 빗줄기를 바라보며 뜯는 건 또 다른 별미다. 빗방울 구르는 처마 밑이었다면 더욱 낭만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추억의 옥수수는 늘 한 정물화로 남아 있다. 소쿠리에 담긴 옥수수! 이런 풍경을 담은 옥수수를 만나면 잊고 지내던 예전의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학교 급식으로 옥수수 빵이 나온 시절이 있었다. 누런 옥수수 가루가 씹힐 정도로 식감은 거칠었지만 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있었던지.

모양과 크기는 요즘의 식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섯 개의 빵 덩어리가 붙은 구조였다. 그게 문제였다. 급식 시간 때마다 빵 한 줄에 다섯 명이 매달렸다. 교실은 들썩거렸다. 덩어리째 손대중으로 쪼개다보니 모양과 크기가 제멋대로 나왔다. 옆쪽 빵 귀퉁이가 딸려오는가 하면, 반대로 뜯겨나가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이 쪼개주기도 했지만 희비가 엇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소 당번을 서면 하나가 더 얹어졌다. 교실 바닥은 마루였지만 늘 청결했다. 번쩍거렸다.

옥수수 빵이 그리워지는 건 그 거칠고 투박했던 추억의 맛도 맛이거니와, 오순도순 나눠먹던 정감어린 장면이 일렁거려서다. 빵이 많이 묻어 간 쪽에서 덜 간 쪽에 떼어주는 나눔! 7080세대의 시골 초등학교에선 옥수수 빵을 통해 나눔을, 아니 도덕을 배웠다. 나눔이 던져주는 부피는 컸다. 빵 한 조각엔 천상의 맛을 품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에겐 눈물 젖은 빵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지만, 가슴 저변에 애잔함이 물결친다.

사람들은 그래서 맛있는 게 생기면 누구에게 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몇몇 이웃과 간식거리를 서로 나눠 먹곤 한다. 시장에서 사온 옥수수며, 부침개며, 제철 채소가 대표 메뉴다. 일전에 이웃의 따스한 정이 가득 담긴 찐빵이 향수를 자극하며 삶의 무게와 속도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었다. 소쿠리에 담긴 누런 옥수수는 살맛나는 삶을 향유하는 방법이 뜻밖에도 이렇게 단순하고 가까운 데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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