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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변호사의 사건 뒷 이야기] 따뜻한 법

/법무법인 대호



어느 날 90대가 가까운 촌로와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들 3명이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분들의 얘기에 따른 사건의 개요는 가족의 배경을 비롯하여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작은 택시회사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서울 인근에 있는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다만 회사에서 적지 않게 자동차 사고가 나서 매입한 땅의 명의를 자신이 아닌 큰 아들로 하였다. 이는 채권자들로부터의 집행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장자이니 할아버지로서는 모든 것을 맡기고 차후 가족을 책임지고 돌보라는 뜻도 있었다.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 서울로 유학도 보내주고 모든 것을 뒷바라지 해 주었건만 큰 아들은 기대와 달리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반면 큰 아들을 제외한 형제들은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는데 큰 아들과 달리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다. 그 후 큰 아들은 집을 나가면서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던 '땅문서'를 모조리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한참 세월이 흘러 서울 인근에 신도시가 계획되었고 신도시예정구역에 포함된 큰 아들 명의의 토지도 수용될 예정이어서 약 10억여 원의 보상금이 곧 지급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과 다른 아들들의 가난을 이야기하며 큰 아들이 뺏어간 땅을 반환받고 토지 보상금도 당신과 다른 작은 아들들도 받게 해달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우선 시급한 것은 보상예정 토지에 대해 나오는 보상금 지급금지가처분(채권자: 할아버지, 채무자: 큰 아들, 제3채무자 : 국가)신청이었다. 보상금이라는 돈은 지급되어 버리면 산일되는 것이므로 본안 소송 전에 큰 아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 급했다. 상담을 마치자 마자 급히 위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여 가처분인용결정이 받아들여져서 돈을 묶어 두기는 했다. 하지만 본안에서 할아버지의 주장이 인용될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즉 할아버지가 자신의 돈으로 큰 아들의 이름으로 매입하여 현재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상태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으로 토지를 매입한 행위'를 증여로 보게 된다면 현재 큰 아들의 소유이므로 아버지가 지금에 와서야 아들에게 토지를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반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단지 명의신탁을 한 것이라고 법원이 판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으로 무효이기는 하나 판례상 위 법 시행 전에 명의신탁 법률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여전히 명의신탁자(할아버지)가 명의수탁자(큰 아들)에게 토지 내지 그 토지매입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명의신탁의 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명의만 수탁자에게 있을 뿐, 실질적인 권리관계 즉 세금을 신탁자가 내거나, 등기권리증 등 관련 서류를 신탁자가 소지하는 등 실질적인 처분권을 여전히 명의신탁자가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의신탁을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은 위 입증사실이 불명확하여 법리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볼 때 작은 단칸방을 전전하는 동생들을 위해서 보상금의 일부라도 양보하지 않는 큰 아들은 너무나 '나쁜 장자'였다.

이런 소송에서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패소가능성이 있다 하여 지레 소송을 포기하면 안 된다. 더욱이 가족 간의 사건일 경우에는 조정의 여지도 많으므로 더욱더 그렇다.

이윽고 첫 재판이 열렸다. 예상대로 판사는 "판결하지 않겠다. 당사자를 꼭 데리고 오라" 며 조정을 권고했다.

그 후 몇 번의 조정을 거쳤으나 원·피고 간 바라는 금액 차이로 조정이 되지 않았다. 이에 판사가 조정이 안 되면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더욱 완강한 할아버지의 태도로 초조한 것은 필자였다. 판결로 가면 거의 패소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조정에 지친 재판부도 다음 기일을 조정이 아닌 변론기일로 잡으면서 우리 측에 하는 말이 "이건 법리적으로 가면 증여입니다"라고 정중히 "판결 내용"을 고지하는 것이었다. 조정을 완강히 거부하는 우리 의뢰인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결국 필자는 할아버지에게 몇 시간 동안 조정불수락으로 인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면서 조정에 어렵사리 도달하였다.

다만 필자는 재판부에 조정문구상 합의된 금액 외 큰 아들이 할아버지에게 꼭 생활비를 매달 얼마씩 지급하는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필자가 당시 조정을 강권한 이유는 판결도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았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상소절차를 거친다면 그 와중에 90대 촌로가 건강을 해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판결로 갔다면 위 부자는 더 이상 인연의 끈을 가지지 못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한 생활비 지급을 매달 꼬박해야 하는 큰 아들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아버지와의 인연을 계속 가져가야 하므로 필자는 일말의 가족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점도 있었다.

필자가 바라는 법은 일도양단이 아닌 '따뜻한 법'이다. 법리적으로 쉽지 않았던 사건을 끝까지 조정하기 위해서 힘써 준 당시 재판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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