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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종이지도가 말을 걸어오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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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길을 잘 못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이 냉큼 경로를 재탐색하겠다고 목청을 돋운다. 길을 나설 때마다 듣는 이런 잔소리도 이젠 이골이 나서 그러려니 하지만 때론 핀잔으로 들리곤 한다. 그 상냥하고 친절한 길 안내를 핀잔으로 느낀다는 건 어쩌면 편리함에 길들여진 내 의식에 가하는 죽비소리를 듣고 있음일 것이다. 생소한 그 어떤 낯선 곳도 용케 길목을 짚는 영리한 내비게이션도 늘 길 공부를 해야 한다. 새로 생긴 길들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일전에 그랬다. 내비게이션이 그토록 추천하던 길을 가다 헤맨 적이 있다. 뜬금없이 어느 으슥한 골목 안으로 재촉하기에 지름길을 안내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막다른 골목. 내비게이션도 헷갈릴 때가 있구나 싶어 되돌아 나오니, 세 갈래의 선택지가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중 어디로 갈까? 애타게 묻고 있었지만 내비게이션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통밥 굴러 알아서 가라는 얘긴가. 개중 민틋한 길을 선택해 들어서는데 그제야 경로를 재탐색하겠단다.

이번엔 우회전하란다. 뭔가 큰 길이 있나 싶었는데, 꾸불꾸불 이어지는 논길이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뒤를 돌아보니 초입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집들도 저만치 아득하게 가물거린다. 그야말로 안개 속이다. 이 와중에 내비게이션은 구겨진 체면을 바로 세우겠다는 건지? 한 길만 고집한다. 번번이 엉뚱한 시뮬레이션 길 안내를 띄워놓고선 골목을 돌고 또 돌게 한다. 뒤늦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가동하려니, 한나절 진땀을 뺀 배터리가 잠자고 있다.

논두렁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지의 미로에 갇혔을 것이다. 꾸부정한 할아버지는 망망대해에서 깜빡거리는 키 작은 등대 같았다. 너무 반가웠다. 종이에 비뚤비뚤 길을 그려주셨다. 그 복잡다단한 고차원 방정식의 미로를 이해하기 쉽도록 간명한 길로 풀어놓은 종이지도! 감사의 절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석양에 타는 황홀한 저녁놀과 들녘, 바람 따라 물결치는 숲, 주름진 얼굴로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담아낸다.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종이지도가 그토록 고마웠던 건 길 안내 때문만은 아니다. 종이지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첨단기기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이런 물음을 던져서다. 굽이굽이 삶의 길목에서 길을 잃고 배회할 때 인생좌표를 밝혀줄 내비게이션 하나씩을 갖고 있는가? 희망을 품고 달리는 인생행로에 올바른 이정표를 안내하고, 조언하는 내비게이션 말이다. 그 인생좌표 내비게이션은 부모가, 스승이, 지혜로운 책이 될 수 있다.

종이지도는 또 묻는다. 편리한 타성에 젖어 혹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도전적 야성이 퇴화되고 있지 않는가?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 낯선 여행길에 나설 땐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슴 설렜다. 오지에선 도로지도책은 나침반이었다. 너덜거리는 지도책 한 권으로 보물찾기하듯 시골길을 누비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때론 물어물어 지도에 없는 새로운 길과 먹거리, 볼거리를 개척하곤 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나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길이 있었던 거다.

인생행로는 결국 방향이다. 그 기로에서 후회 없는 삶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더러는 착오를 줄일 때까지 길을 개척하는 이른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그것은 저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가치를 발견하고도 갈고 닦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다면 골목길을 배회하며 경로 재탐색 타령만 하는 인생좌표에 다름 아니다. 인생좌표란 변화무쌍한 세상 삶에 설정돼 있기에 표류하지 않도록 열정을 다해 굳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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