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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6) 5공 신군부 비리 온상으로 전락(上) 사장은 사단장 출신, 간부는 부하장교들

최종수정 : 2017-08-08 12:21:31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6) 5공 신군부 비리 온상으로 전락(上) 사장은 사단장 출신, 간부는 부하장교들

1988년 11월 검찰의 5공비리 청산 수사를 알리는 방송화면. 사진 속 인물은 구속 수감되는 김재명 전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유튜브
▲ 1988년 11월 검찰의 5공비리 청산 수사를 알리는 방송화면. 사진 속 인물은 구속 수감되는 김재명 전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유튜브

87년 6월 민주화 운동으로 신군부 독재가 무너진 다음해인 1988년 11월 검찰은 본격적인 5공화국 비리 청산에 들어간다. 이때 서울지하철의 감추어진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나는데 5공 비리의 '복마전 중에 복마전'으로 불릴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한때 일부 노선을 민자에 맡겼던 서울지하철은 민간이 극심한 적자부담에 시달리자 1982년 서울시로 다시 환원된다. 이때 탄생한 것이 서울시 지하철공사다. 신군부 치하에서 탄생한 것이다.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국내 최대의 지방 공기업이었던 서울지하철은 신군부에게는 욕심나는 곳이었다. 이로 인해 지하철공사는 5공 권력형 비리에 깊숙히 개입함으로써 국정감사에서 해체론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런 권력형 비리가 으레 그렇듯 시작은 인사였다. 지하철공사의 초대 사장은 3성 장군 출신의 김재명 사장이 맡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군 시절 거느리던 부하들을 대거 기용해 공사의 요직에 앉힌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하철공사가 군사지하회사가 됐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는데 특히 '86년말 승진시험 부정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은 돈을 받고 시험 답안지를 바꿔치기해 부정합격시키고, 보존해야할 시험서류를 소각해 증거를 인멸한 사건이었다.

1988년 11월 검찰의 5공비리 청산 수사를 알리는 방송화면. 유튜브
▲ 1988년 11월 검찰의 5공비리 청산 수사를 알리는 방송화면. /유튜브

검찰의 수사 착수 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건 당시 지하철공사 인사과장은 특채로 기용된 군 장교 출신이었으며, 시험관리책임자였던 총무부장은 김 전 사장이 사단장 시절 참모로 일했던 부하장교였다. 이 두사람을 포함해 당시 지하철공사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 중 35%가 군 출신이었다. 임원 5명 중 2명, 부장 24명 중 11명, 과장 50명 중 14명, 지하철공사가 '병영화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또한 일반직 전체 직원 710명 중에서 60%에 가까운 400여 명이 특채로 지하철공사에 들어와 온갖 비리의 시발점이 됐다.

사실 지하철공사의 병영화와 이에 따른 부패는 국정감사 이전부터 세간에 알려졌던 문제였다. 상급기관인 서울시는 85년 지하철공사에 대한 정기감사에서 인사·경리 부정을 무더기로 적발, 간부직원 수십 명을 파면·해임·감봉 조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연히 상급기관의 지시를 따라야할 김 전 사장은 이를 무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군부가 뒤에 있었기에 서울시는 별 도리가 없었다. 김 전 사장은 심지어 신군부가 몰락해가는 와중에 벌어진 국회의 국정감사장 출석 요구에도 해외행사 참석을 핑계로 불참했다.

이처럼 신군부의 비호 하에 고삐가 풀린 지하철공사는 전동차 고가 구입 의혹, 세림아파트 폭리사건과 권력형 부조리에서부터 지하철 구내광고 및 자판기 영업권의 특혜 임대 등 갖가지 비리 의혹을 낳는다.

이는 태생부터 빚더미로 지어진 서울지하철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지하철공사의 부채규모는 김 전 사장 재임 말기인 86년 2조398억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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