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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3) '문화 그린벨트 지킴이' 문래예술공장 한정희 매니저

최종수정 : 2017-07-23 14:07:00

[서울을 만드는 사람들] (3) '문화 그린벨트 지킴이' 문래예술공장 한정희 매니저

문래예술공장 한정희 매니저 문래예술공장
▲ 문래예술공장 한정희 매니저 /문래예술공장

서울에 부는 거센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의 바람에도 꿋꿋히 버티며 예술가들에게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곳이 있다. 철가공지역인 문래동3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운집해 있는 문래창작촌이다. 문래창작촌은 예술가들 스스로 만들어낸,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자생적 창작공간으로 서울의 '문화적 그린벨트'나 다름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선 서울문화재단 산하 문래예술공장의 책임자인 한정희 매니저는 "문래창작촌에 정착한 예술가들과 철공소 사람들의 힘"이라며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자신과 10명 남짓한 동료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이대석 작가의 I am your map 송병형 기자
▲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이대석 작가의 'I am your map' /송병형 기자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천근성 작가의 기린 송병형 기자
▲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천근성 작가의 '기린' /송병형 기자

일제강점기 방직공장이 줄지어 들어서면서 바로 옆 당산동과 함께 태평양전쟁을 위한 군수물자 생산기지로 성장한 문래동은 해방후 산업화 시기에 철공소들이 모여들면서 철강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까지는 규모가 큰 철강업체도 들어와 있었다고 전해지며 많은 노동자가 북적거리던 공단이었다. 그런 화려한 과거의 흔적은 이제 창작촌 내에 남은 소규모 영세 철공업소들의 모습에서만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IMF의 영향이다. 이때 부도난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며 생겨난 폐공장과 주인 없는 철공소는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저렴한 임대료, 철공소 건물의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손색이 없었고, 지하철과 버스 등 교통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터줏대감인 철공소 사람들과 예술가들의 라이프사이클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공존이 가능했다.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천근성 작가의 바가지 송병형 기자
▲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천근성 작가의 '바가지' /송병형 기자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이대석 작가의 못 빼는 망치 송병형 기자
▲ 문래창작촌 거리에 설치된 이대석 작가의 '못? 빼는 망치' /송병형 기자

한 매니저는 "아침형 인간인 철공소 사람들과 밤에 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각자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며 "게다가 공간 역시 철공소는 1층, 나머지 비어있는 지하와 2~3층을 예술가들이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문래창작촌에 들어선 예술가의 공방. 1층은 철공소, 2층이 공방이다. 송병형 기자
▲ 문래창작촌에 들어선 예술가의 공방. 1층은 철공소, 2층이 공방이다. /송병형 기자

2000년 무렵부터 하나 둘 몰려든 예술가들과 철공소 사람들이 어울려 지낸 지 올해로 십수 년째. 낡고 오래된 철공소에서 쇠 깎는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바로 옆 허름한 건물에서는 미술 전시회와 창작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다. 이들은 서로 제작·협업을 늘려가며 '철과 예술이 어우러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술가 스스로 만들어낸 작업공간은 갤러리를 포함해 100여 곳에 이른다. 다만 정책적으로 조성된 창작촌이 아니다보니 한 매니저도 이곳 예술가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지난해 여름 실태조사를 하면서 177명의 예술가를 만났다"며 "쉽게 만나기 힘든 예술가들의 특성상 만나지 못한 이를 포함하면 300여 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300여 명이면 전국에서 단일지역으로 예술인들이 가장 밀집한 곳이다. 게다가 순수한 창작열이 가득한 곳이다. 이들 300여 명에 대해 한 매니저는 "정말 예술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문래창작촌을 대표하는 예술브랜드인 MEET 문래예술공장의 문래창작촌지원사업 의 올해 포스터 문래예술공장
▲ 문래창작촌을 대표하는 예술브랜드인 MEET(문래예술공장의 문래창작촌지원사업)의 올해 포스터 /문래예술공장

문래예술공장은 2010년 1월 개관했다. 당시 한 매니저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통합매니저로 일하며 그 실무를 맡았던 까닭에 전후 사정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 서울시는 일본 요코하마의 '창조도시'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불던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바람에 합류했다. 그해 6월 개관한 '서교예술실험센터'를 1호로, 연이어 서울시 창작공간이 만들어지는데, 문래예술공장은 5번째 시설이었다. 한 매니저는 이 5번째 시설이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래창작촌은 우리사회가 지켜줘야 할 가치가 있다"며 "이곳 창작촌 출신이라는 게 예술가들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문래예술공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문래예술공장 전경 문래예술공장
▲ 문래예술공장 전경 /문래예술공장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문래예술공장은 지역사회 문화예술 네트워킹의 중심지 역할과 더불어 신진 유망예술가들의 실험 및 다원예술 특화 지원센터로서의 창작 허브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지하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2820㎡ 규모로, 대형 공동작업장(M30), 공연장 겸 연습실로 사용가능한 다목적발표장(박스씨어터), 예술가 호스텔, 녹음실, 영상편집실, 세미나실 등 창작 및 발표 활동을 위한 다양한 제작 및 지원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래예술공장 내부, 1층 다목적공간 스튜디오M30 전경 문래예술공장
▲ 문래예술공장 내부, 1층 다목적공간 '스튜디오M30' 전경 /문래예술공장
2017 MEET 선정작 박지나 작가의 부록 낱장의 형태 7.17 25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경 박지나 작가
▲ 2017 MEET 선정작 박지나 작가의 '부록:낱장의 형태'(7.17~25)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경 /박지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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