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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성우 변호사의 사건 뒷 이야기] 성폭행 사건 진행에 대한 소고

이성우 변호사



최근 대법원은 형부의 성폭행으로 낳은 3살 난 아들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지적 장애 여성에게 징역 4년형을, 또 이 여성을 성폭행하고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형부에게도 징역 8년 6개월형을 확정했다. 이 여성은 어린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중범죄자이나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성폭행의 피해자이기에 연민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어느 성폭행 사건과 관련되어 필자가 느꼈던 것들을 풀어내고자 한다. 필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외국인이었던 독특한 성폭행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다. 관여라는 표현이 적당한 이유는 필자가 피고인의 변호인도 검사도 아닌 피해자의 조력자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외국인 상담소를 찾아온 여성의 요청을 받고 피해자 증인 신문에 동석하게 되었다. 증인 신문은 성폭행 사건의 특성상 재판정 방청석에 아무도 있을 수 없는 비공개신문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비공개 신문이었으므로 재판장이 방청석에 혼자 앉아 있는 필자를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아 외국인 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변호사이고 피해자의 요청 하에 동석하였다고 하니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일종의 형사소송법상 동석 신청에 대한 현장에서의 추인인 셈이었다. 관련 법령상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은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피해자 등의 신청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그 신청에는 동석하고자 하는 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 동석이 필요한 사유 등을 명시하여야 한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고인과 피해자에 관한 재판을 철저히 따로 분리하여 진행하는데, 이에 이 사건의 증인신문 전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정(在廷)시에 법정과 연결된 증인대기실에서 피해자와 필자를 머무르게 하였다. 그 대기실은 마치 어린이집처럼 벽면이 알록달록 꽃모양 색지로 예쁘게 꾸며져 있어 아동성폭행 사건이 많구나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이 퇴정하자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었고 재판장, 배석 판사, 검사, 법원 직원, 피고인의 변호사, 심지어 통역인까지 모두 남자였다. 거기다 피고인 측 변호인의 연이은 증인신문내용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매우 난처하고 민망한 질문투성이에다가 일부 내용은 황당하기까지 하였다.

신문 도중 재판장은 변호인의 일부 질문 내용이 너무하다 싶었는지 제지하기도 하였는데 아무리 피고인을 위한 변론이라도 너무하다 싶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피해자는 그러한 상황에 주눅 들지 않고 조목조목 이야기하였다.

그러던 중 피고인 측 변호인이 피해자에게 집요하게 특정 상황을 물어 보았고 통역인이 그 내용을 전달하고 피해자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통역인이 갑자기 피해자에게 "ask your lawyer(변호사에게 물으세요)"라고 하였다. 이에 필자가 영어로 피해자에게 부연설명을 했더니, 재판장이 퉁명스럽게 재판의 진행을 방해하니 재판정에서 나가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물론 형사소송법 관련 규정에는 재판장은 피해자와 신뢰관계 있는 자로 동석한 자가 부당하게 재판의 진행을 방해하는 때에는 동석을 중지시킬 수 있으나 필자의 당시 몇 마디는 부당하게 재판의 진행을 방해한 것이 아니었고, 부적절한 질문에 당황한 피해자를 조력하는 수준의 것이었다. 일면 갑자기 필자에게 물어보라고 한 통역인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게 무슨 조력자인가. 형사소송법 규칙에는 동석자를 피해자의 배우자 등과 변호사, 그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당시 필자의 조력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다고 지금도 믿는다.

돌이켜보면 위 사건에 관한 사법행정에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증인신문 때 피해자를 제외하고 모두(심지어 필자 또한) 남자였으니 최소한 통역인이라도 여자였다면 어떠했을까. 남자들로 둘러싸여 자신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토해낸다는 것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으리라. 또한 형사사건절차가 직권주의에 따라 진행되기는 하나 위와 같은 피고인 측의 부적절한 질문 내지 공격에 대해서 공판검사가 놓칠 수 있는, 피해자의 변호인이 적극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년 전에 도입된 '피해자 국선변호사(피해자변호인)'제도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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