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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홍경한 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불러들여 새로운 관계를 맺고 통합이 아닌 차이를 잇는다. 장르, 학제 간 경계조차 무의미한 연속적 개입과 침투를 고의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예술의 의사소통 방식과 내용, 형식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유도하거나 낯선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작업들은 시각적, 개념적 어려움을 양산하는 탓에 가끔 외면의 대상이곤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과정과 연관된 기억과 경험을 소환 혹은 복원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상호성을 체득하는 자유로움의 장이자, 예술가들에게 그 무대가 갖는 의미는 미술자체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인들은 간혹 예술이라는 언어의 육화된 의미를 배척하는 지점에서 깨어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이 기괴한 상품가치로서의 망령들은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기 일쑤다. 어쩌면 척박한 생태를 핑계 삼은 내적 게으름과 안일함이 무의식을 뚫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불안한 현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제도적 체념, 생존의 절박함도 상품으로써의 망령이 활개 치는데 한 몫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과 이름으로 변신한 채 이내 현세를 지배하는 자본의 망령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어떤 합당한 명분에도 냉정한 태도를 내보인다. 이성과 논리, 특유의 감성을 삭제시키고 불특정 다수의 지지 속에서 헛헛한 욕망을 사육한다. 급기야 정신을 포박하고 야금야금 예술가들의 생명까지 갉아먹는다.

실제로 자본의 망령은 철학적 빈곤함이 부유하는 것들, 숫자만 늘여놓아 애써 먼 길을 찾아간 이들을 맥 빠지게 하는 것들을 내놓도록 만든다. 단지 철지난 양식들을 발작하듯 재연하거나 과거의 형식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놓은 것들, 깊이 없음을 뻔뻔하게 자인하는 결과물을 토해내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예술의 종말을 통해 예술이 비로소 자유를 획득했음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들마저 마구잡이로 생산한다. 한마디로 그 어떤 가능성도 인정되는 시대에서 놀랍도록 진부하고 획일적인 것들을 내건다.

결국 자본의 망령은 곧 소진해버릴 물질을 선물하지만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을 거둬들이고 구태의 반복, 새로움에 대한 외면에 지속성을 부여한다. '내가 이러려고 미술가가 되었나'라는 뒤늦은 후회를 비웃으며 조변석개하는 소비취향이 권력임을 자인케 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놀이'로 대응할 수 있고 놀이의 성과로 휘발성 강한 팬덤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놀이란 실은 공유될만한 자기연민과 실패를 그럴듯한 변명 아래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거나, 잘해봤자 기형적 제도를 살짝 비트는 수준일 뿐이다. 본질의 변화는 그 정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가가 신뢰할 수 없는 대중적 속성에 삶을 의탁한다는 것, 경박한 자본주의에 몸과 정신을 떠맡기면서도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못함은 결국 예술작품에 내재된 고유한 역할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의 결여를 완성한다. 예술본질의 추구를 멀리하며 단발성 풍요로움에 삶을 할애할수록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했던 예술가적 권위는 무너진다.

허나 작금 한국 미술계에서 엿보이는 일련의 흐름은 음습하고 괴기한 저택을 빠져나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좋은 숙주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자박으로 인한 일시적 안락함과 물질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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