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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1) 우연의 일치? 대선 때면 지하철의 역사가 이뤄진다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1) 대선 때면 지하철의 역사가 이뤄진다

새로 건설된 서울 지하철을 타고 시찰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가운데) /국가기록원



지난해말 서울지하철 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선 출마용 업적쌓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었다. 서울시의회에서 서울교통공사 출범안이 통과되는 과정에 진통이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지하철이 대선과 엮인 것은 이때만이 아니다. 사실 서울지하철은 태생부터 대선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대선 때 지하철의 굵직한 역사가 이뤄졌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1971년 4월 21일 시청앞 광장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공사 개시를 축하하는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공사 주체는 서울시로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지하철 건설을 이뤄냈지만, 기념식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날 화려한 기공식의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종로선(1호선의 첫 구간)을 반드시 3년만에 완성시키겠다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날 정부는 서울내 14개 간선도로 변에 태극기와 서울시기를 게양했고, 광화문 등 9개 주요도로에는 대형 아치가 가설했으며 현판과 선전탑까지 세워 축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기공식에서는 박 대통령 부부가 버튼을 누르자 5개의 대형 해머가 작동해 철제 파일을 땅에 박아댔고, 파일에서는 5색 연기가 솟아나 하늘을 수놓았다. 하늘에는 5000개의 고무풍선까지 떠다녔다. 당시로는 매우 화려한 장관이었다.

서울 도심에 건설 중인 1기 지하철 공사 현장 /국가기록원



그런데 이런 장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약속이 지켜질 지에 대한 의심은 물론, 공사 자체가 제대로 진행될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국의 기술진에게는 전인미답의 난공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일본이 공사비를 차관으로 제공할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여의도 부지 매각으로 생긴 시비 22억 원으로 무턱대고 공사를 시작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더욱이 제7대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4월 27일 실시되는 7대 대선에서는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내건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시 야당의 표밭이었던 서울에서 어떻게든 한 표라도 더 여당표를 얻어내야 했다. 역사적인 지하철 건설을 조기에 시작해 서울시민들에게 치적을 선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박 대통령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김 후보는 57.9%를 얻으며 농촌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한 박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634만여 표를, 김 후보는 539만여 표를 얻었다.

이처럼 서울지하철과 인연이 깊은 7대 대선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박빙의 대선으로 인해 정권 유지에 위기감을 느낀 박 대통령이 다음해 10월 유신을 발표하며 장기독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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