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단 한 장의 청춘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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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단 한 장의 청춘 티켓

최종수정 : 2017-06-07 08:00:00
김주식 언론인·세태평론가
▲ 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바람 부는 날 소나무를 만나면 문득 상념에 젖곤 한다. 저 싱그러운 푸른 잎을 어떻게 지켜온 것인가? 세찬 비바람과 얼음 추위에 시달리며 생을 이어왔을 이파리들. 그 모진 수난을 어떻게 견뎌온 것인가? 사태진 누런 황토를 뿌리로 움켜잡은 소나무. 이파리를 나부끼며 산 아래를 굽어보는 그 자세는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이며, 강한 집념의 표출이다. 돌처럼 단단히 여문 저 굴곡진 나뭇가지마다 인고의 상흔이 남아 있건만 오히려 당당한 척 하기에 눈물겹다.

그런 소나무에서 청춘(靑春)을 발견한다. 늘 푸른 이파리의 생기발랄함이,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자유분방함이 청춘의 어감이 자아내는 원초적 본능과 닮아 있다. 산등성이에 홀로 선 채 태양을 바라보는 늠름한 기상은 원대한 이상(理想)을 꿈꾸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파도처럼 굽이치는 자태에서 질풍노도의 숨결이 물씬 묻어난다. 닮은 게 어디 타고난 소나무의 형상뿐이랴. 코를 톡 쏘는 짙은 솔향기에는 벅차오르는 설렘이 묻어 있다. 바람 불면 운율을 탄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사전이 일러주는 청춘은 길어봐야 십년 남짓.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 청춘은 짧았다. 불꽃처럼 반짝거렸던 청춘이었다. 이 유월에 메뚜기 한철 같은 청춘. 산천 구경을 만끽하며 완보하리라는 그런 청춘 열차는 아니었다. 눈 깜짝할 새 스쳐 지나간 구간. 그 짧고 금쪽같은 청춘 구간에서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인생의 열차는 행선지가 있다. 아, 이제야 깨닫는구나. 인생의 행선지는 그 황금시간대를 지나면서 아로새겨졌다는 것을. 단 한 장의 청춘 티켓! 꿈과 이상, 희망을 싣고 어디론가 데려다줄 백지 티켓. 청춘 구간에서 미래의 인생 로드맵이 시나브로 그려졌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면 전율이 인다. 과연 열정을 다해 청춘을 꾸려왔던가? 배회하며 허송세월한 건 아닐까? 귀한 젊은 시간들을 허공에 날린 건 아닐까? 이 물음을 곱씹을 때마다 후회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청춘은 천재지변에도 봄이 오듯 찾아온다. 어느 누구든, 어디에 있든 기어이 오고야 만다. 흙수저든, 헐벗었든, 주린 배를 움켜쥐었든 찾아온다. 청춘은 이런 공평한 내력을 지니고 있기에 고맙다. 문제는 어떻게 쓰느냐다.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길에는 늘 설렘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좌절과 절망, 불안, 아픈 마음의 파도를 이겨내야 한다. 구름이 잠시 해를 가려 마음이 어두워지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청춘의 본질이다.

청춘의 계절은 봄이다. 소나무의 청춘은 계절을 탓하지 않는다. 늘 푸른 잎을 지켜오기에 사계절 내내 청춘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람들은 흔히들 청춘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대중가요의 '청춘을 돌려다오' 노랫말이 중장년층의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세월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청춘을 누가 빼앗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 청춘은 내가 받아들이고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이상을 꿈꾸는 것도, 젊게 사는 것도 내 몫이다.

청춘은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왕년이란 단어는 없다. 미래만 있을 뿐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자, 그들에게는 희망찬 설계도만 있을 뿐이다. 청춘의 뜰에 왕성한 추진력의 샘물이 솟구치는 까닭이다. 그런 뜨거운 열정으로 인생을 배우고 갈고닦아 청춘을 꽃피우는 것이다. 가슴에 청춘이 박동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쓸쓸할까. 세상이 고단하고 번잡할지언정, 그래도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는 건 청춘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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