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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팔만대장경의 숨은 뜻

소나무의 청정하고 자애한 기운은 대한민국의 청정함과 자애함이다. 몇달전 경남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이 공개됐다는 기사가 났다. 2008년에 숭례문에 화재가 나자 그 이후에 나라의 중요한 보관 건축물의 출입문을 폐쇄한 지 8년 만의 공개라 한다. 팔만대장경은 그 가치를 산정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해 화재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한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진즉에 알아보고 탐을 낸 것은 일본이었다. 이태조가 1395년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인 포로 570명이 돌아오자 이에 대한 답례로 팔만대장경의 인쇄본을 하사한 적이 있었는데 불교를 숭상하던 일본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팔만대장경판에 집착하여 끈질기게 대장경을 달라고 애걸하곤 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그동안 사라질 고비를 무수히 맞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위기에는 내부적 위기와 외부적 위기가 존재했는데 내부적 위기라 함은 일본이 하도 대장경 원본을 달라 하니 태종도 세종도 한때 대장경판을 건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은 적도 있었으나 신하들이 하도 반대를 하여 마음을 접었다는 것이다. 인쇄본을 일일이 찍어서 보내는 것도 꽤 큰 부담이었다. 신하들은 대장경의 가치를 고려해서 제동을 건 것은 아니었고 다만 대장경을 넘겨주면 나중에 또 다른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외부적 요인이라면 대장경은 일제 강점기에도 위기를 맞는데 당연히 일제가 강제로 반출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 해인사 승려들은 대장경을 불태워서 같이 타 죽겠다며 거세게 저항했고 어떤 승려는 죽어서라도 대장경이 보관되는 일본 어디든 저주를 내리겠다며 칼로 자해하기도 했다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6. 25 한국전쟁 때도 인천 상륙작전으로 후방에 고립된 인민군은 해인사 일대에 은신했는데 전투기 편대장인 김영환 장군 대령은 해인사를 폭격해 인민군을 소탕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김 대령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틴다. 빨치산은 금방 빠져나가지만 문화재를 잃으면 복구할 길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대령은 전시 명령 불복종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 위기를 맞았다가 공군총장 탄원 덕에 간신히 구제되었다하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해인사도 창건 이후 무려 일곱 차례나 큰불이 났을 때도 팔만대장경은 무사했다. 문화재가 잘 보존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편안하다는 얘기다. 문화유산은 바로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우리의 정신이다. 고려가 몽고의 침략에 맞서고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자 팔만대장경을 잘 조성했고 숱한 고비와 난관 속에서 팔만대장경이 천 년의 세월을 잘 견뎌온 것처럼 국가적 난국을 잘 이겨나가리라. 이것이 팔만대장경이 우리 국민에게 주는 뜻이자 힘일 것이다./김상화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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