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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냄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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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황토 담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고샅길. 밥 짓는 연기를 피어 올리는 키 작은 굴뚝. 여기에 홍조 띤 저녁노을이 산 아래로 나지막이 내려와 동네 어귀를 덧칠하면 한 폭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이 목가적 풍경을 떠올리는 건 눈의 호사 때문만은 아니다. 저 황토 담장 너머로 솔솔 전해져오던 된장찌개 내음이 그리워서다. 어찌나 구수하게 진동했던지. 우리 집 된장찌개 냄새인가? 동네 아이들은 술래잡기에 푹 빠졌다가도 침을 꼴딱거리며 집으로 줄달음을 놓았다.

투박한 뚝배기에 보글거리는 토종 된장찌개! 입맛이 영 시들할 땐 저 풍경 속의 냄새를 떠올리면 구미가 샘솟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군침이 절로 괴는 것을 어쩌랴. 이따금 그 냄새의 흔적을 찾아 내로라하는 맛 집을 들르곤 한다. 그러나 매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전가의 보도처럼 수십 년 간 바통을 이어오는 전통 된장집이 없어서가 아니다. 세월 따라 맛 따라 출렁거리는 변덕스러운 입맛 탓도 아니다. 풍경 속의 냄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구수했던 된장찌개 냄새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 그것은 풍경 속의 된장찌개에 또 다른 냄새가 시나브로 스며들어 있어서다. 밥 짓는 연기 냄새, 물바람에 묻어온 흙냄새, 울긋불긋 피어난 꽃들의 향이 파도처럼 물결쳤을 것이다. 눈과 귀로 맡을 수 있는 풍경의 냄새도 아른거렸을 것이다. 황토 담장, 툇마루, 아늑한 저녁노을, 졸졸거리는 개울물, 춤추는 나무숲, 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산 중턱에 걸린 달. 이런 감성의 냄새들이 된장찌개에 배어있었던 거다.

마음 밑바닥 어딘가에 묻어둔 냄새의 편린들! 아, 이제야 가슴을 친다. 그 풍물 냄새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내 추억의 된장찌개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구나. 그 때 그 시절의 향취와 체취를 버무려 맛을 낸 냄새랄까. 오랜 세월 기다림으로, 그리움으로 절여진 그 냄새. 어쩌다 옛 고향 풍경과 엇비슷한 마을길을 거닐다 된장찌개 내음이 스치면 왜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지, 군침 도는 된장찌개를 먹고도 왜 까닭모를 허기증을 느끼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설령 고향을 무대로 똑같은 풍경과 소품들을 끌어다가 찌개를 끓인다 해도 그 된장 냄새를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공기 좋고 물 맑은 자연의 풍물이 존재하지 않거니와 장맛도, 손끝 맛도 다르다. 분위기는 또 어떤가. 세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냄새는 그 풍경 속에서 날개를 펼쳐 배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냄새를 더듬거리면 툇마루에 동그마니 올라앉아 달을 쳐다보는 단란한 가족이 보이고, 오순도순 옛 이야기가 들려온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두고두고 맛보는 된장찌개. 추억은 보글보글 된장 알갱이를 튕겨 내는 뚝배기에 닿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그래서다. 된장찌개는 꼭 뚝배기에 끓여 먹는다. 왠지 뚝배기가 어릴 적 맛보았던 된장찌개 맛을 끄집어내줄 것만 같아서다. 뚝배기를 보면 인간적인 여백이 보인다. 투박하지만 후한 인심, 은근히 오래가는 따스한 정, 가식이 없는 소박함, 좀 부족하지만 진솔한 향기가 뚝배기에서 묻어난다. 사람과 닮은꼴이다.

뚝배기 같은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인간미가 묻어난다. 사람냄새다. 삶이 팍팍할수록 사람냄새가 그리운 법이다. 향기 나는 사람이랄까.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는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많다. 더러는 고단한 사람들이 마음껏 뛰놀게 해줄 넉넉한 마음의 뜰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인간적인 여백이다. 풋풋하고, 순박하고, 토속적인 사람. 내 추억의 된장찌개 맛이 그리운 건 어쩌면 그 때 그 시절의 투박한 사람냄새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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