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26 : 휴식(이즈미르)
내가 이즈미르에 다시 온 건 여기에 케르완사라이(Karvan Saray) 크즈라라 하느(Kizralagi hani)가 있다는 걸 늦게나마 알았기 때문이다.
자라에서 앙카라를 거쳐 밤새 달려 16시간 만에 이즈미르에 도착했다.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이래저래 시간을 보냈다.
호텔을 찾아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어 들렸다. 속도 측정기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구경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돌아서 나오려니까 차 한 잔 하고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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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고 잠시 눈 좀 붙인 뒤 점심도 먹을 겸 밖으로 나갔다. 관광명소는 지하철 코낙(Konak)역 근방에 다 몰려있다. 시계탑, 케르완사라이, 옛 유적지 아고라(Agora), 모스크 케메랄트(Kemeralti)등이 있다.
케르완사라이에 들렸다. 2층 건물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에 공터가 있고 사방에 방이 있다. 가게는 그야말로 만물상이다. 없는 게 없다. 그렇다고 골동품 가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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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잠시 눈을 감는다. 무너지고 오랜 기간 버려진 건물을 번듯하게 복원만 한 박제된 케르완사라이가 아니라, 시장터의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에서 당시의 모습을 느껴본다.
이렇게 소란스러웠을까, 그때도? 지금보다 훨씬 더 소란스럽고 시끄러웠을 거다. 산보 나오거나 물건 사러 나온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정담을 속삭이려 나온 사람, 지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목을 축이려 온 사람, 유모차를 끌고 온 어머니들이다.
외국인보단 내국인이, 외지인보단 나들이 나온 현지인이 대부분이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말속에는 사랑과 진실과 정감이 넘쳐난다. 어디에도 과장이나 눈속임이나 거짓은 없다. 여유롭고 한가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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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들이 나눈 대화에는 참과 거짓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함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가는 치열함이 있었다. 항상 물고 물리는 터질 듯이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이즈미르는 오랜 세월 로마나 그리스로 가는 물자를 싣는 항구였다. 동방에서 날라온 물자를 흥정하고 배에 싣던 곳이다. 떠난 지가 언젠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 세월 온갖 고난을 딛고 물건을 가져온 장사치는 자신이 흘린 땀방울 수보다 더 받고 싶어 목청을 높인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 역시 만만치 않다.
얼마를 받고 얼마를 줘야 만족할까? 인간은 이런 소란 속에 상대의 욕망을 어루만지고 구슬려보려는 흥정과 거래를 통해 같이 살아가는 지혜를 키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