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찬밥' 면치 못한 대선후보 문화예술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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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찬밥' 면치 못한 대선후보 문화예술 공약

최종수정 : 2017-04-30 16:10:07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최근 가가호호 발송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공보'에는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적시한 공약의 대부분은 안보와 경제, 사회, 복지 등에 국한될 뿐 문화예술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주요 후보들의 4차례 TV토론에서도 문화예술은 빠졌다. 오는 5월 2일 한 번의 토론이 더 남아 있지만 역시 문화예술은 열외다.

두어 시간 남짓한 공적인 채널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문화예술은 후보들마다 운영 중인 누리집에서도 마찬가지 대우를 받는다. 구석구석 뒤져봐도 관련 시책은 찾기 어렵고, 있다 해도 존재감은 초라하다. 심지어 안철수 후보의 누리집에선 '기타' 부분을 클릭해야 '예술분야'가 등장한다.

사회 갈등 해소의 참다운 묘약이자 문화강국의 디딤돌이 되어줄 예술과 예술인들에 대한 정책은 이처럼 뿌옇고 뿌옇지만 불행 중 다행이도 순전한 누락은 아니다. 다만 대체로 두루뭉술하고 허약하다는 게 문제다.

일례로 지난 4월 25일 한국문화경제학회와 입법조사처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차기 정부 문화정책' 세미나 자료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문화예술 공약으로 '예술인 문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예술인 창작권 보장'을 내세웠다. 4월 29일 공개한 공약집 '4대 비전 12대 약속'엔 '문화유산가치 제고' 및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등도 포함되어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문화가 있는 삶의 구현', '문화산업발전의 지속 가능성 확보',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 등을 주요 문화예술 정책으로 내걸었다. 공약집에는 그 하위 카테고리로 '문화예술공정화 특별법 제정', '문화예술 공공기관 예술인 중심 자율기구화', '문화기본권 보장 정책 수립과 실행',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확충' 등을 올려놓고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문화민주주의'와 '한류산업 육성',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확대' 등을 관심정책으로 내놨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 등을 관련 정책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이 앞세운 공약의 다수는 이미 지적되어온 문제들을 재차 짚어내는 수준에 불과해 깊이가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어떤 문제를 거론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문제에 관한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각 대선 후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방법론은 꽤나 기초적, 원론적이다.

재탕, 중복 공약들도 넘친다. 문재인 후보의 '예술인 창작권 보장'이나, '생활문화육성',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등의 공약은 이미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후보 당시 밝힌 10대 문화공약 중 하나로, 진일보한 측면이 약하다. 안철수 후보의 '문화예술인 근로조건 개선' 등은 사실상 타 후보들의 '문화 복지'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의 테두리 내에 든다. 그의 또 다른 공약인 '문화콘텐츠 저작권 강화'나 유승민 후보의 '청년일자리 창출 사업 추진' 역시 지난 대선 때 회자된 아이템이다.

특히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언급한 '문화민주주의',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문재인 후보의 '한류 르네상스 실현'과 유승민 후보의 '한류산업 육성'은 민간에서 시작된 흐름에 편승하려다 용두사미로 끝난 이전 정권의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루한 측면이 있다.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10여년 이상 되풀이되고 있거나 겹치는 공약들이 드물지 않은 현상은 예술인 실업급여제도 도입, 예술인 4대 보험 지원, 공정계약 보장, 문화격차 해소, 지역 문화 활성화, 문화재 보존 관리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같이 설득력 있는 재원 조달 방법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듯 변별력이 희미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예술 공약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고 여전히 개선해야할 필요성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든지 문제 개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전현직 국회의원, 당대표 등을 지낸 후보들이 고루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평소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55만 명으로 추정되는 예술인들의 표를 의식하면서 새롭지도 않은 카드를 누차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공약을 제외하곤 가치 구분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내용, 독자성을 따질만한 문화예술정책이 드물다는 건 밝은 미래의 실질적 근원인 문화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네 삶의 질을 풍요롭게 제시하며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온 예술에 대한 낮은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개인 혹은 단체를 구성해 특정 후보들을 지지하는 등,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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