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감동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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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감동의 순간

최종수정 : 2017-03-29 08:00:00
김주식 언론인·세태평론가
▲ 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수런수런 돋아나는 새싹들이 어느덧 봄을 말하고 있다. 이 골짝 이 골짝 봄노래가 메아리친다. 매화며, 산수유며, 개나리가 꽃망울을 톡톡 터뜨린다. 겨우내 잎들을 털어낸 나무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햇볕을 쬐며 싹을 틔운다. 그 군락의 밑동을 붙들고 있는 흙무더기는 들숨날숨으로 풀풀 거린다. 이제 봄의 문턱인가 싶었는데 숲은 벌써 연두색 물감을 풀어놓았다. 계곡을 타고 달려온 물바람의 설렘은 또 어떤가. 연둣빛 이슬로 꽃망울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을.

봄소식은 이렇게 햇빛으로, 바람으로, 흙으로, 색으로 말한다. 이 기막힌 봄 향연에 조화를 부리는 주연은 햇빛이다. 따스한 생명의 입김을 흙무더기에 불어넣고,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종내 열정을 태워 화사한 꽃으로 산화하는 것이다. 과일을 영글게 하는 것도 햇빛이다. 금빛 가루의 그 거름이 달디 단 맛으로 올라오고, 알록달록 색깔을 입히고, 상큼한 향기를 선사한다. 햇빛이 싹으로, 잎으로, 꽃으로, 과일로, 향기로 변하는 저 경이로운 조화!

햇빛의 조화가 어디 나무들에게만 있겠는가. 무겁고 고단한 우리네 일상에도 조화를 부린다. 우리는 그러나 그걸 잊고 산다. 햇빛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으로 차오르고, 감동이 되고, 감탄사가 된다는 것을. 걱정과 근심의 우울한 그림자를 지우는 활력소가 반짝거린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느낄 줄도 모르고, 아니 느끼려고도 하지 않는다. 햇빛은 눈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감동이 불꽃 튀고, 울화를 풀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준다고 했더랬다.

가슴으로 느끼는 햇빛의 맛은 어떨까?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듯이. 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 세상 햇빛이 새로운 몸짓으로 다가온다. 이른 아침 베란다에 한가득 채워진 햇빛이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마음이 호사스럽다. 발을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따스하고 행복하다. 산속을 헤매다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불쑥 나타나는 한 줄기의 햇살은 반갑고 신비롭다. 울적한 날 때맞춰 쨍하고 해가 뜨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연두색을 물들인 숲 속의 햇빛은 싱그럽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의 맛을 알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큰 나무통 앞에서 그와 알렉산더 대왕이 주고받은 대화가 이를 방증한다. 문답이 걸작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는 알렉산더의 물음에 그는 한마디로 일갈한다.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영혼이 자유로운 그에겐 햇빛은 상념의 날개였으며, 철학을 샘솟게 하는 자양분이었다. 이따금 이 문답을 접할 때마다 놀란다. 어쩌면 그가 '일조권'의 창시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서다.

햇볕을 쬘 권리. 그는 그걸 알았다. 어떠한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햇빛의 절대적 가치를 알아차렸다. 피부로 맛보는 달콤한 행복. 햇빛을 즐기는 그 잣대에 따라 행복감이 천양지차라는 상대적 가치를 그는 간파했다. 그가 왜 '작은 것에 만족하라'고 설파했는지를 되새김하게 한다. 햇빛은 흔하고 거저 얻어지기에, 세속적인 잣대로는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감동을 찾을 수만 있다면 행복이 클 것이라는 그 역설을 말이다.

그래서 행복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감정선이 점점 무뎌가는 세태에 디오게네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느껴라'일 것이다. 무르익어가는 이 봄, 일상 속에 뿌려지는 한 빛 한 빛을 한눈팔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한 조각의 잎사귀까지도 '감동의 순간'으로 기억하련다. 햇빛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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