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싸구려와 껍데기들
  • 플러스버튼이미지
  • 마이너스버튼이미지
  • 프린트버튼이미지
  • 카카오스토리버튼
  • 밴드버튼
  • 페이스북버튼
  • 트위터버튼
  • 네이버포스트버튼

[홍경한의 시시일각] 싸구려와 껍데기들

최종수정 : 2017-03-19 11:52:49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예술가들의 책무는 시대정신과 예술가치의 선상에서 예술의 정의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에 있다. 예술존재에 대한 미학적 태도와 고민을 통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는 것 역시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즉, 예술가란 작품인체 포장된 '물건'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과 이유를 스스로 재규정하는 자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오늘날 '작가'라는 명사에는 취향공동체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이들도 다수 끼어 있다. 미적 수준이 곧 위선적 교양인 이들에게 아양 떠는 대가로 몇 푼의 돈을 받는 '장식품 생산자'도 포함된다. 심지어 직접 '유통'에까지 뛰어 들어 '판매'에 열을 올리는 장사치들도 이젠 작가다. 그야말로 작가 인플레다.

작가 인플레를 주도하는 부류는 유행 중심의 미술, 소비 지향적 미술, 시장 중심적 미술 추구로 예술의 예술에 의한 예술적 방법론을 방해한다. 금전을 숭배하는 싸구려 철학으로 미술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연구, 무게감 있는 시대담론 형성마저 저해한다. 물론 미술이 스스로 미술일 수 있는 근거를 배제함으로써 미술작품이 단순한 인테리어용품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인지 규명할 수 없게끔 헷갈리게 하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다.

문제는 오로지 타인의 지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중에 아부하는 '아무나 작가들'의 습성이 어떤 거름장치 없이 미술공동체에 스며들면서 휘발성 강한 '상품'을 진정한 예술인 냥 대우하거나 치부되는 상황이 보편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심지어 예술가를 정의하는 새로운 잣대로 시장에서의 능력과 가능성을 옹립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중요한 시대와 역사, 문화적 담론생산자로서의 작가적 위치를 약화시킴은 물론, 풍요로운 동시대미술의 다양성을 획일화하고 왜곡하는 작가 과잉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한 건 이러한 폐해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별 볼일 없는 작품성임에도 상업적 기념비를 획득한 혹자들은 마켓에서의 영화(榮華)가 훗날 미술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황망한 믿음을 예비 작가들·학생들에게 심어준다. 일부는 성과주의에 미쳐있는 일부 정부기관들의 지원에 힘입어 시장에서의 성공을 미술계 전반으로 옮겨오거나 배양함으로서 미술의 가치 옹립과 아무 상관없는 오염된 예술관, 상업주의와 포퓰리즘을 대중에게 광연하게 전파한다.

불행히도 오염된 예술관의 확장에는 미술관들도 거든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미술관은 더 이상 미적 가치체계를 획득하고 규정하는 공간이 아니다. 엘리트적이고 교육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일반 대중문화에서는 찾기 힘든 작품을 전시하고 창조의 자율성을 유지시킬 수 있음을 자발적으로 증명해야하지만, 미술관 또한 상업적광고와 대중주의에 침몰되어 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예술의 정의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참다운 예술가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고지 및 후원 대신 거대 갤러리와 진배없이 대중의 취향에 문을 열어 브랜드화하고, 마케팅,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마치 동시대미술의 최신 흐름인 냥 질서를 부여하면서 미술계와 국민들을 호도하고 기만한다.

정부의 그릇된 가시적 결실주의와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이 뭔지 모르는 미술관, 창작자들까지 유통시장에 손을 뻗거나 졸업 전부터 '돈 맛'에 길들이기 급급한 학교가 미래의 예술상을 지배하는 사이, 정작 창작에 있어 각인해야 할 많은 것들은 외면된다. 민생고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 아닌 한 미술의 가치와 시장의 가치를 명료하게 구분하고 있는 작가들을 점점 더 변방으로 밀어낸다.

반면 미술이 기획의 형태로 생산, 소통, 소비되는 중심에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작가들은 그만큼 늘어난다. 사교와 부르주아적 품위유지에 부역하는 수가 증가할수록 천박한 미술상황은 더욱 상스러워지며, 이윤추구에 부응하는 투자가치에 의해 예술작품이 재단되거나 계량되는 구조 역시 보다 굳건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작금 우리 앞에 놓인 미술계 현주소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하나 말 하지 않는다. 지적도 없고 개탄도 없다. 허긴, 이미 싸구려와 껍데기들이 장악한 판에서 뭔 말인들 귀에 박힐까 싶지만.


배너
daum
많이 본 뉴스
핫포토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