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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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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그것을 허물었다면 무척 서먹서먹했을 거다. 손바닥만한 밥상 한복판에 걸터앉은 칸막이! 눈높이만큼 끌어올린 그것은 프라이버시를 가려주는 커튼이었다, 숟가락 하나가 뻗칠 수 있는 한계 영역을 규정한 밥터의 담벼락이랄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방랑 식객은 그 불문율을 알기라도 하는 듯 단단히 빗장을 지른 채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서울 중심가 어느 맛 집의 혼자 먹는 밥, 이른바 '혼밥' 풍경이다.

"혼자예요?" 나홀로 식객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질문 공세. 저만치 노른자위 밥터가 유혹하는데 별도리가 있겠나. 핏대를 세워 목청을 뽑는 종업원의 '응답하라 혼밥!'에 득달같이 화답할 수밖에.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급행 서빙은 없었다. "합석해도 될까요?" 양해와 눈치의 갈등 속에 더디게 굼뜨던 완행의 서빙만 찔끔거렸다. 세상 편하게 달라진 혼밥. 혹자는 한마디 거든다. 이 식당이 아니면 누가 이 혼밥의 고민을 알아줄까?

그러나 이 절규를 풀어준 건 뜻밖에도 7080 시절의 밥집 아주머니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알아차렸다. 혼자 밥을 먹고 싶어도 쑥스럽고 어색해 식당가를 배회한다는 것을. 눈총과 홀대를 받지 않는 혼밥 향유권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혼밥의 서러움과 아픔을 힐링해줄 식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머니들은 알아차렸다. 모두들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았지만 아주머니들은 그걸 해냈다. 엄마표 밥집은 그렇게 눈을 떴다.

식당은 허름했다. 주 고객은 자취생, 고시생, 직장 초년생들이었다. 너도나도 혼자였다. 뭉뚱그려 2030 혼밥족. 다들 혼자라고 해서 개별 밥상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칸막이로 장벽을 친 것도 아니다. 독서실처럼 벽을 마주보고 앉는 혼밥 전용 좌석을 갖춘 것도 아니다. 엄마표 밥집은 묘했다. 종업원이 없었다. 모든 게 셀프였다. 누구든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면 한 가족이 됐으며, 밥상머리마다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한솥밥이 갖는 마력일 것이다.

밥에는 정성이 묻어났다. 늘 뜨끈뜨끈했다. 정(情)이 모락거렸다.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겐 찬밥은 눈물 젖은 빵에 다름 아니다. 그곳엔 그런 진한 공감대가 흘렀다. 밥집 아주머니는 이따금씩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밥은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고봉밥이었다. 밥이 보약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좀 안다는 자취생들은 밥집을 선택할 때 밥의 윤기를 보고 결정한다. 밥심이 오래갈 밥을 찾는 것이다. 엄마표 밥집은 늘 북적거렸다.

밥집 아주머니들이 긴장하는 때가 있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아주머니들에겐 밥심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모두가 숨죽여야 했다. 그날 저녁 밥집마다 희비는 엇갈렸다. 합격자 수와 대강의 합격률이 나오는 것이다. 대박, 쪽박이란 말은 이때 써먹는 줄 알았다. 희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 밥집이 명당이니 하는 풍수지리설이 설왕설래했다. 당시 전설처럼 내려오는 밥집이 있었다. 심지어 어느 밥상까지.

그 혼밥 풍경은 세월 빠르게 달라졌다. 모처럼 맛소풍을 나왔을 혼밥족. 그들은 그러나 밥터의 향유권은 고사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쫓기듯 허겁지겁 그릇을 비워야 한다. 대화가 없는 침묵의 식사.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묻고 화답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색할 시간도 가질 만도 한데 요즘 혼밥 세태는 그러나 7080 엄마표 밥집과 같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시절의 정겨운 혼밥 풍경을 반추하게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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