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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8) 2호선은 원래 순환선이 아니었다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8) 2호선은 원래 순환선이 아니었다

시청역을 지나는 2호선 전철 모형. /서울메트로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지하철 2호선은 서울지하철 중 유일한 순환선이다. 그러나 원래 계획에서 2호선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어쩌면 서울지하철에 순환선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번 편의 주제다.

1974년 광복절을 맞아 역사적인 1호선 개통식이 있었지만 서울의 교통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맞물려 '서울로 서울로' 전국의 노동인구가 몰려들면서 서울이 팽창한 결과였다. 또한 서울이 팽창하는 데 비례하여 근교의 위성도시들도 함께 발전해 서울생활권은 팽창에 팽창을 거듭해 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호선만으로는 도저히 서울생활권의 팽창을 따라갈수 없는게 당연했다. 인구와 산업시설을 주변으로 분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통체계를 시급히 도입해야 했고, 결국 지하철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1호선 다음으로 건설할 2호선은 '분산'이 최대 목표가 돼야 했다.

이상이 바로 1974년 취임한 구자춘 신임 서울시장이 맡은 임무였다. 전임인 양택식 서울시장(1호선 개통일 육영수 여사 피살로 경질, 2편에서 소개)이 1호선이라는 역사를 이루었다면 이제 구시장은 2호선 건설 역사로 서울의 최대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구시장의 해법은 3핵도시 구상이었다. 당시 교통혼잡의 가장 큰 원인은 도심에 모든 기능이 집중된 단핵도시라는 점. 따라서 서울도심, 영등포, 영동잠실 일대를 각각 하나의 핵으로 발전시켜 서울을 3개의 핵을 가진 도시로 변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미 마련된 지하철 계획에는 이같은 3핵을 연결하는 노선이 없었다. 그래서 구시장은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2호선을 총연장 48.8km에 달하는 순환선으로 변경해 3개의 핵을 연결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78년 본격적인 2호선 공사에 착수했다. 지하철 2호선은 1980년 10월 31일 신설동~종합운동장 간의 1단계 14.3km구간을 시작으로 공사구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개통됐다.

2호선은 1단계 부분개통만으로도 강남권 주민들의 교통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신설동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게 돼 있어 강남에서 서울 도심까지 지하철만으로 이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단계 개통구간의 배차간격은 종일 10분으로 했지만 지하철을 이용한 도심 출퇴근 인구가 예상을 넘어서면서 두 달 뒤인 1981년 1월부터는 출퇴근 시간에는 7분 간격으로 단축했다.

1982년 12월에는 교대역까지 5.5km 구간이 연장개통되었고, 1983년 9월에는 을지로입구~성수, 12월에는 교대~서울대입구, 1984년 5월 22일에는 마지막으로 2호선의 서측 구간인 서울대입구~시청간 19.2km가 개통됐다.

이로써 3핵도시 구상에 기반을 두고 계획한 총 연장 54.2km의 순환선이 완전개통되었다. 8771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6년년 2개월이 걸린 대역사였다.

서울시는 5월 22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청역에서 전구간 개통식을 가졌다. 완전 개통에 맞춰 2호선의 운행시간은 7분 간격으로 조정되었다. 다만 강남보다도 강북의 수송수요가 많은 점을 감안하여 출퇴근시 강북구간은 3.5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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