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작가의 지난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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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작가의 지난 2년

최종수정 : 2017-02-19 13:17:04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유명 작가인 A는 B작가와 일면식조차 없었다. B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단정했다. 작품 해석은 물론 같은 재료와 방법론을 구사했다며 공공연하게 밝히기까지 했다.

필자의 시각은 그렇지 않았다. 둘 다 누구든지 인용 가능한 공유저작물에 흔한 오브제를 부착하는 방식의 작품들이기에 가시적 오해의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개념이 달랐고 내용도 달랐다. 심지어 접근 방향 및 표현방식에서도 교차점은 빈약했다. 때문에 눈에 비춰진 단순 유사성만으로 표절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굳게 믿은 나머지 보도자료를 작성해 여러 언론에 배포했다. 동시에 B의 전시를 진행 중이던 C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내 전시를 취소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필자는 의아했다. 표절이라 보기엔 심도 있는 고찰이 누락되어 있었던 데다가 표절 의혹만으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동네방네 공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쉽게 납득되질 않았다. 아니, 한번 표절 작가로 인식되면 작가 생활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 걸려야 회복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는 꽤나 우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보도는 가혹한 일상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A의 주장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고 B는 하루아침에 표절 작가로 낙인찍혔다. SNS에는 '썩 좋은 수준이 아닌' B가 A를 '벗겨 먹었다'는 치욕스러운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미 홍보까지 진행된 전시를 멈출 수도 없고 A의 표절 주장을 무조건 무시하기도 찜찜했던 갤러리는 전시일정 축소와 함께 이례적으로 '갤러리에 손해가 발생하면 B가 책임지겠다'는 계약서를 요구했다. B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굴욕이었다.

이 와중에도 A는 전시가 진행 중인 갤러리에 B가 자신의 작품을 2005년경부터 표절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듭 발송했다. 그는 3류의 감성, 3류의 정신과 태도를 가진 사람의 전시를 취소하지 않은 건 유감이라고 적었다. 여기엔 타인의 발언을 인용해 "표절을 습관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 "깜이 아닌 사람" 등의 비하적 표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B 작가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처럼 부적절한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멸감에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30년 작가로서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B는 고민을 거듭하다 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해가 있다면 풀어 보려는 마음에 만남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한 이후였다.

법정에선 A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갤러리에 압력을 넣게 된 동기와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이 다뤄졌다. 사달의 원인인 표절여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리곤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선고가 나왔다. B의 승소였다.

법원은 표절 문제에 대해 B가 A의 작품방법의 독창성을 도용하였다는 A의 표현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나아가 업무방해와 명예훼손도 인정했다. 하지만 A는 항소했다. B의 표절은 진실한 사실이며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길고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그 사이 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B의 승소였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필자의 예상과 같았다. B가 사용한 작품 이미지는 누구나 패러디할 수 있고, 표현방법 역시 보편적이라는 점을 들어 A의 표절 주장을 일축했다. 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낸 행위는 B의 인격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며, 전시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봤다. 상습적 표절자라는 주장 역시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법원은 A가 B에 대해 매우 감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B를 자신의 작품을 비롯해 제3자의 작품까지 표절해온 상습적 표절자로 비난한 것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위법한 공격'에 해당한다며 1심보다 무거운 시선을 덧댔다. 그리고 그렇게 약 2년간 이어진 어느 작가의 법정공방은 일단락됐다,

1심과 2심 모두 승소함으로서 B는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표절작가로 둔갑된 채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은 보상받지 못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실체적 삶,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그 많은 세월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A도 남을 것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시간과 금전, 막대한 감정소비가 이뤄졌다.

아쉬운 것은 만약 A가 조금만 더 신중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작품의 표현형식과 지향점이 다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소송까지 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약간만 사려 깊었다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스스로 피폐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 지난 일이지만.

한편 필자는 이번 표절 논란을 지켜보며 소통이 부재한 사회, 갈수록 모질고 혹독해지는 미술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영 개운하지 않았다.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사람인데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예술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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