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이전의 왕조시대 때는 임금이 부덕하면 나라에 '역병(疫病)'이 창궐한다는 얘기가 돌곤 했다.
최근 SNS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위와 같은 말을 올리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대통령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조류인플루엔자(AI)·소 구제역 사태가 연이어 발생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라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재위 12년이던 1788년 5월, 나라에 원인 모를 역병이 돌자 서둘러 관리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감염자에 대한 단순 격리가 사실상 대책의 전부였던 그 당시, 정조는 성 밖 교외에 병막 설치, 사망자 위로금 지급, 역병 차단에 게으른 관리 엄벌 등 직접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고 국가행정력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정조와 같은 리더십을 발견할 수 없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정부도 나름 총력을 기울여 AI와 구제역 사태를 막고 있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부실 대책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부실 대책의 대표적 예가 이른바 '물백신' 논란일 것이다.
한창 AI가 번질 당시 정부가 방역 과정에서 사용한 소독제 상당수가 효력미흡 제품이었단 사실이 밝혀져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구제역 또한 항체 형성율이 100%인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는 등 '물백신' 논란을 피해가진 못했다.
전국의 소·돼지 축산농가에 구제역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전북 정읍과 충북 보은 소 사육 농장의 항체형성률이 각각 5%, 19%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농가에 접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할 시스템이 없는데다 정부의 관리 허술로 인한 결과였다.
사실상 AI 및 구제역 같은 전염병의 경우 철새나 야생동물에 의해 전파되는 사례가 많아 바이러스를 100% 차단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만약 농가에 바이러스가 퍼졌을 경우 얼마나 빠른 시일 내에 사태를 수습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러스 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공직자의 '무사안일(無事安逸)'과 '편의주의(便宜主義)'다.
앞으로 정부가 개선할 가축질병대책 안에 이 같은 사고방식을 없앨 수 있는 방법도 포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