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2월의 전설
  • 플러스버튼이미지
  • 마이너스버튼이미지
  • 프린트버튼이미지
  • 카카오스토리버튼
  • 밴드버튼
  • 페이스북버튼
  • 트위터버튼
  • 네이버포스트버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2월의 전설

최종수정 : 2017-02-08 08:00:00
김주식 언론인·세태평론가
▲ 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2월의 대학 교정은 쓸쓸했다. 교정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지난 주말 나는 그 흔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뜰엔 잔설이 희끗거렸고, 시선은 낯익은 소나무 숲에 오래 머물렀다. 졸업사진의 풍경으로 수놓았던 소나무 숲! 아련함이 가슴을 차고 올라왔다. 눈은 시렸다. 입춘을 알아차린 소나무 숲은 초록빛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대학 졸업식 즈음이면 더욱 짙은 물감을 풀 것이다.

2월이 오면, 아니 졸업의 계절이 오면 내 기억의 창고엔 허허로움이 스친다. 졸업하던 그날의 추억이 거센 숨결로 밀려왔다. 졸업식 날 취업한 과동기들이 눌러쓴 사각모는 눈부시도록 빛났으며, 그 가족들 주변엔 따스하고 향기로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걸 봤다. 대학원 진학을 빼고 취업 못한 동기는 손꼽을 정도였다. 개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사각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골서 올라온 가족들은 그 엇갈린 표정을 읽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2월은 냉혹했다. 나는 교문을 나서면서 '자취방 학생'에서 '실업자 김 씨'로 바뀌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취직한 친구들에겐 교문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개선문이었지만, 나에겐 무너진 상아탑이었다. 그땐 그렇게 보였다. 2월의 밤은 처연했다. 그날 밤 자취방을 나와 흰 눈을 펑펑 맞으며 소나무 숲 부근 교정을 배회했다. 살을 에는 눈바람. 소나무 숲은 침묵했고, 나는 그 아래 웅크린 채 울먹거렸다. 눈바람은 뜨겁게 젖은 얼굴을 죽비처럼 마구 때렸다.

불현 듯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긴 그림자에서 내 2월의 아픈 뒤안길을 본다. 졸업철이다. 60대 이상의 실버 취업자 수가 20대 청년을 앞지른 취업구조. 설렘과 기대 속에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도 있겠지만 내 아픈 2월을 답습할 졸업생은 또 얼마나 많을까. 혹자는 '마무리와 시작이 공존하는 2월'이라고 하지만 미취업생들에겐 '마무리와 시작이 충돌하는 2월'이다. 그 충돌의 스파크 속에 그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자. 졸업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윈스턴 처칠은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했더랬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성공은 꿈꾸는 자에게 있고, 그 꿈의 뿌리는 희망이다. 희망이 흔들리면 꿈이 흔들린다. 그래서 혹자는 '실업보다 더 무서운 게 꿈과 희망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절망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이다.

마음이 추울수록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꿈은 더욱 간절해지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저 꿈틀대는 고치를 보라. 그 무엇이 고치껍데기 밖 세상에 나오려 발버둥치는 광경을 말이다. 그건 취업을 갈망하는 졸업생들의 몸부림이자 절규에 다름 아니다. 안쓰럽다고 해서, 고치껍데기를 섣불리 벗겨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거기에서 나비는 온전할까. 과연 날개를 펴고 제대로 날 수 있을까. 아니다.

날개의 힘!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고치를 수없이 떼밀어냈을, 그 고통을 감내해야 비로소 훨훨 나는 나비가 되는 것이다. 병아리가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이치와 같다. 인고의 세월을 건너뛰어서는 비상할 힘, 세상 급류를 헤쳐 나갈 생존본능이 생기지 않는다. 그 고통의 허물을 벗고 사회의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 건 온전히 자기 몫이다. 내 2월의 전설이 가르쳐준 체감 교훈이다.


배너
daum
많이 본 뉴스
핫포토
  • 페이스북
  •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