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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3) 나틈공법이 없었다면 서울지하철도 없었다

최종수정 : 2017-01-17 14:38:04
1983년 4월 25일 지하철 3호선 노선 중 나틈 공법을 적용한 최초 터널 개통식 현장 서울메트로
▲ 1983년 4월 25일 지하철 3호선 노선 중 나틈 공법을 적용한 최초 터널 개통식 현장 /서울메트로

지하철 불모지 한국에서 극복해야할 장애물은 '자금'만이 아니었다. '혁신적인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서울지하철은 없었다. 나틈 공법이 대표적인 기술이다.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1호선 종로선 구간이 개통된 이후 10년 뒤, 1985년 3호선 독립문~양재 구간과 4호선 한성대입구~사당 구간이 개통되면서 1기 지하철(1~4호선)이 모두 완공돼 운행에 들어간다.

지하철 3·4호선 노선은 대부분이 교통 밀집지역인데다 도로 폭이 좁은 구시가지였다. 또한 많은 문화재가 있었다. 특히 보물 1호인 동대문, 보물 177호인 사직단 정문, 지방문화재 13호인 동십자각 등은 공사로 인해 훼손된다면 큰일이었다.

기존의 개착식 공법은 시공이 어려웠다. 공사현장이 서울의 교통난을 가중시킬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일부 구간은 공사중지명령이 내려질 정도로 도심 교통체증이 극심해질 우려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질 특성까지 문제였다. 인적이 드문 교외지역에서 사용했던 재래식 터널 공법도 지반 침하 우려가 있었다. 자칫 터널 위 수많은 도시기반시설과 건물이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두된 것이 나틈(NATM) 공법이다. 이 명칭은 'New Austrian Tunnelling Method'(신 오스트리아 터널 공법)의 약자로 1956년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된 공법에 1962년 국제암반학회가 붙인 정식명이다.

기존의 터널 공법이 강재나 목재 등의 지지보를 이용하여 굴착면을 보호하는 데 비해, 나틈 공법은 터널을 굴진하면서 기존 암반에 콘크리트를 뿜어 붙이고 암벽 군데군데에 구멍을 뚫어 죔쇠를 박아서 파들어가는 공법이다. 토질과 지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사를 할 수 있었다.

다만 돈이 많이 드는데다 특수장비를 다룰 수 있는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시공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이로 인해 경험이 풍부한 오스트리아·일본과 기술제휴 형태로 공법을 도입한다. 오스트리아와의 제휴는 신한엔지니어링, 일본과의 제휴는 대우엔지니어링이 맡았다.

이렇게 나틈 공법을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기존의 도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기를 단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차츰 나틈 공법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여건이 특수한 구간과 재래식 공법으로 계획돼 있던 7개 구간에도 이를 적용했다. 더 나아가서는 도심부 전 구간에 확대 적용, 그 결과 3·4호선을 조기 완공할 수 있었다.

나틈 공법은 우리나라 지하철 건설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지질 여건이라도, 어떤 형태의 터널이라도 안전하게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터널 건설 공사의 오랜 숙제였던 지하수 처리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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