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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계 만연한 회의감과 패배감

홍경한 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사회 제도는 다양한 질곡의 시간을 건너면서 많은 부분에서 수정, 재고되어 왔으나 미술계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주도세력들의 추악한 커넥션과 욕망에 의해 갈수록 부패해졌다. 여기에 천민자본주의, 물신숭배주의, 고약한 배금주의를 숭배하는 시대흐름은 미술계 구성원들에게마저 기회주의적 풍토와 권력에 아부하는 습성을 심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미술을 이끌어 온 단체들의 미술운동, 어떤 기관의 수장을 맡은 이들 중에는 미술인과 미술계를 위한다기 보단 개인, 혹은 화단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다투고 반목해온 반문화적 권력투쟁에 가까운 것들이 더 많았다. 맑고 청렴하며 민주적인 듯 비춰지는 교묘한 상징과 기호로 인해 착각을 진실이라 수용했을 뿐, 실은 공공의 이익에 앞서 사익을 투영한 사례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화단, 학계, 비평계, 시장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해 있다. 자신들의 비전문성을 학위나 직책 등으로 위장한 채 미술제도에 영향력이 지대한 이들과의 음성적인 교류를 통해 주요 기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제도를 사유화, 도구화하며 정부나 자본주 등 투자 주체들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가끔은 불미스러운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동안 견고하게 유지해온 특별한 위치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인 혹은 가솔들을 제도권에 입성시키고, 미성년자를 성적대상화 해 음란한 상상력을 표출해도 절차적 정당성 내지는 예술로 포장하면 그만이었다. 사적 입신을 위해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공동정범에 가까운 막역지우가 실리를 위해 어느 한쪽이 변절하는 도의적 그릇됨을 목도하면서도 화제와 비판은 잠시였을 뿐 결국 시간은 언제나 그들 편이었다.

야망을 감추기 위한 허구의식을 간파하지 못하는 사이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등한시하는 사이 그들의 확고한 위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만큼 구성원들의 세밀한 관찰과 저항, 의견 표출이 동반되어야 했으나 희미함 또는 무력했다. 심지어 치열한 현장에서 일궈진 미술의 가치를 폭 넓은 문화가치로 전이시켜 구성원에게 공급하고 그들의 문화향유와 욕구를 다시 미술현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미술계 주역으로서의 책임마저 우리 스스로 도외시했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 미술작품이 단순한 장식품들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인지 규명할 수 없도록 만든 자본주의의 폐단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끼리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판에서 상식과 정도란 무의미하다는 누적된 회의감이 녹아 있다.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미술과 현상, 미술과 사회, 미술과 시대에 관한 담론형성과 미술과 삶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미술구조는 권력과 자본을 쥐고 있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악순환 속에 있으며, 불행히도 그들이 제공하는 개념과 잣대에 따라 미술의 가치와 미술의 의미, 정의 및 질서까지 규정되고 있다.

문제는 그 자체로 미술계 구성원에게 심리적 계급주의를 심어주고 패배감을 안겨도 변화의 단초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대안은 변별력을 상실했으며, 일그러짐을 일그러졌다 말 할 인물도 없다. 설사 있다 해도 폄하하기 바쁘다. 여기엔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내가 아니기에 싫을 따름이다.

어쨌든 으레 '희망'을 말하는 새해가 밝았지만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조형적 문맥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야할 미술, 그리고 그 미술을 미술답게 옹립시킬 수 있는 혁신적, 전투적 주인공이어야 할 미술인들의 다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어쩌면 변질된 흐름에 익숙한 채 또는 예의 그 불안정함과 막연함을 안은 채 정초를 걷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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