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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 육영수 여사 저격사격에 묻혀버린 최초의 지하철 개통식

[서울지하철 40년 비하인드 스토리] (2) 육영수 여사 저격사격에 묻혀버린 최초의 지하철 개통식

1974년 8월 15일 국내 최초의 지하철인 종로선이 개통해 달리고 있다. /서울메트로 제공



1974년 8월 15일은 제29주년 광복절인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 개통식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터지면서 지하철 개통식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묻힌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개통에 혼신을 다한 양택식 서울시장은 물러나게 된다.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은 종로선(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인 서울 1호선의 애칭으로 1972년 공사 착공 1주년을 기념해 명명) 건설 기간 내내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녀 '두더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혼신을 다한 종로선은 착공(1971년 4월 12일) 3년여만에 완공돼 광복절 오전 11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 직전인 이날 오전 10시 23분,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행사 중 경축사를 낭독하던 박 대통령을 향해 청중석에서 총탄이 날아든다. 첫 총탄은 박 대통령을 빗겨갔지만 두번째 총탄은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를 쓰러뜨린다. 이어진 문세광과 대통령 경호팀 간 총격전에서 합창단의 여학생 한 명이 숨진다. 머리에 총탄을 맞은 육 여사도 이날 저녁 사망한다.

이날 광복절 경축행사는 양 시장이 주관했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전대미문의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결국 양 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구자춘 시장이 새로 취임했다.

그에 앞서 양 시장이 성대하게 치르려던 역사적인 종로선 개통행사도 직격탄을 맞는다.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됐고, 개통식 이외의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이날 조간신문까지만 해도 지하철 개통을 축하하는 사설과 기사들이 일제히 실렸지만, 석간신문에는 사회면 구석에 조그맣게 게재되는 등 국내 최초의 지하철 개통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빛을 잃고 말았다. 이것이 서울메트로가 회사의 역사기록에서 기억하는 종로선 개통식이다.

종로선은 초기 총 연장 9.54km로 전체 역수는 9개였다. 서울역-시청-종각-종로3가-종로5가-동대문-신설동-제기동-청량리로 이어지는 노선이다. 운영주체는 서울시의 지하철영업국이었다.

비록 개통식은 비운을 맞았지만 종로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1974년 개통 당시 종로선의 이용승객은 1일 평균 23만명 수준, 서울시가 가진 차량은 60량에 불과했다. 철도청 소속의 차량을 포함해도 186량에 불과했으며 하루 열차운행횟수는 210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종로선은 4년만인 1978년 차량이 294량으로 늘고, 1일 열차운행횟수는 526회에 달하게 된다.

개통 당시 운임은 기본구간(8km) 30원에 거리비례제 운임체계를 도입해 매 1km당 초과운임을 부과했다. 요금은 이후 조금씩 올라 1981년 6월에는 기본구간 요금이 100원으로 뛴다. 이렇게 요금은 올랐지만 당시 종로선에는 냉방시설도 없었고 환기장치도 자연환기방식이라 승객들이 불편이 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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