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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달걀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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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그의 이름은 세 번씩이나 바뀌었다. 처음에 '닭의 알'로 불리다가 인간의 세 치 혀에 익숙해지도록 까다로운 문법 절차를 밟아야 했다. 소유격 조사의 '의'가 단모음화로 '이'가 되면서 '닭이알'이 됐고, 이것이 오늘날의 '달걀'로 압축 진화됐다. 낱소리마다 톡톡 튄다. 보름달처럼 달뜨게 하는 '달'은 탱글탱글한 샛노란 노른자위를 연상케 하고, '걀'은 굴러다니는 음색이 샹송풍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는 인간들이 주로 불러주는 계란(鷄卵)이란 호도 갖고 있다.

호든 이름이든 알집을 풀면 그냥 '닭이 낳은 알'에 불과하다. 그로서는 '알' 딱지를 떼어준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다른 가금류 알들의 호칭을 보라. 칠면조알, 메추리알, 오리알 … . 떡하니 '알'만 곁다리로 갖다 붙인 꼴이다. 그들이 이런 개념 없는 홀대를 진작에 눈치챘더라면 침을 튀기며 이빨을 드러낼 일이다. "왜 우리는 '칠면쟐', '메추랼', '오랼'이라고 품격 있게 불러주지 않느냐"면서. 달걀은 호칭에서부터 여느 알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그는 '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생명을 낳는다'는 신비의 상징이었고, 부활의 주력을 지닌 신성물이었다. 말하자면 영혼의 용기(容器)로 대접받았다. 부활절과 풍년제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우리네 명절 차례상에 올라오는 필수 품목이다. 그의 조상묘도 있다. 경주시 황남동 155호 고분. 고대 신라시대의 흔적이 담긴 그곳 유물함 토기에서 그들 조상이 발굴돼서다. 스무여 알의 껍데기. 전혀 부패되지 않았으니 인간들은 그 신묘함에 감탄사를 발했다.

그런 그의 화려한 운명을 기구하게 만든 건 인공부화! 1840년대 중국과 이집트에서 발원된 부화술은 세계 축산 농가들을 덮쳤다. 국내에도 상륙해 노크했지만 처음엔 시큰둥했다. 부화술은 그 신통력을 부리지 못한 채 닭장 뒷간에서 한 세기 넘게 숨 고르기만 했다. 그러다 압축 성장으로 헐떡거리던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양계산업도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는 알까기에 매진했고, 씨암탉은 그 수량과 스피드에 놀란 듯 눈을 깜박이며 '판박이 알'을 마구 찍어냈다.

대량 산란의 산실이 된 닭장. 당시 도심의 나이트클럽이 닭장으로 불린 건 우연이 아니다. 닭장도 북적거렸고, 클럽도 북적댔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인간과의 함수에 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과유불급! 닭장 알받이에 그들이 차고 넘치면 계란판 신세가 된다는 것을. 요즘 그 차고 넘치던 달걀이 품귀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닭장을 초토화해서다. 살처분된 가금류만도 3000만 마리. 이 가운데 알받이 산란계 2300만 마리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갔다.

그의 종족은 가파르게 급감했다. 인간들은 '달걀 절벽'이라 불렀다. 속수무책인 그들은 탄식한다. 전남 해남에서 처음 AI가 발원됐을 때 촘촘한 방역망을 쳤더라면 이토록 씨가 마르진 않았을 거라고. 현실은 참담했지만 그의 몸값은 갑절 이상 뜀박질했다. 식당가와 반찬가게에는 달걀 반찬이 사라졌고, 제과업계는 일부 품목을 중단했다. 그것은 그동안 싼값에 날로 먹은 인간들의 탐식에 대한 경고였고, 만만한 게 달걀이 아니라는 아우성이었다.

인간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거린다. 갑자기 올랐으니 그 체감도 클 것이다. 급기야 미국에서 164만 개의 달걀을 공수해와 투하하기로 했다. 국내 달걀사에 용병달걀이 등장한 거다. 할당관세를 없앴다지만 국내산 값과 엇비슷하다. 엄마 품에 한 번도 안기지 못하고 인간에게 강제로 헌납했던 그들은 말한다. 부화술이 아니라, AI를 막아낼 중장기적인 방비술을 빨리 개발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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