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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세밑의 명(名)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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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언론인·세태평론가

'2016년호' 열차도 소실점을 그리고 있다. 산 아래 휘돌아나가는 기찻길의 낭만 열차였더라면 저토록 처연한 삽화로 가물거리지 않았을 거다. 여느 세밑인들 쓸쓸한 여운을 남기지 않겠냐마는 올해가 더욱 유난한 것은 불투명한 정치상황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게다. 추위까지 스며들었기에 세상 풍경은 어수선하고 스산하다. 잔뜩 웅크린 마음들은 칙칙한 옷차림으로 표출됐고, 그 위축 심리는 기어이 소비 경기를 바닥으로 침몰시켰다.

세월을 뿌리치듯 떠나는 '2016년호'에 왜 아쉬움이 없겠나. 현란한 점등 아래에 번지는 애잔한 발라드 가사에 귀를 모으게 되고, 거리를 배회하는 군상들의 표정에 시선이 오래 머무는 것을. 세밑이란 그런 것인가. 찬바람이 깊은 새벽녘 책상 서랍에 오래 묵혀 너덜거리는 주소록을 뒤척이며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해낸다.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친구도 맞닥뜨린다. 그 흑백 필름을 돌리다보면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세밑이 공허한 건 내세울만한 일 없이 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일 게다. 한 해의 궤적을 복기해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열정적인 청춘의 시간들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그 금쪽같은 시간을 혹여 허투루 쓴 게 아닌지 반추하게 된다. 벅찬 새해를 맞을 때만 해도 순간순간을 정성들여 살겠노라고 다짐했건만 그게 그리 쉬운가. 세밑은 그래서 태생적으로 가슴 적시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작업이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세밑 풍경 하나가 작은 울림으로 가슴 때린다. 서울 한복판 명동 어느 중국음식점. 삐거덕 출입문이 열리자 모든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됐다. 남루한 옷차림에 퀴퀴한 냄새를 동반한 손님. 노숙인이었다. 그의 눈은 모퉁이쪽 딱 하나 남은 빈 테이블에 꽂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듯 발걸음을 뗄 때마다 뒤뚱거렸다. 사람들은 소마소마했다. 다들 본능적으로 엉덩이가 들썩거리는데, 여종업원이 달려가 부축하며 예의 안내하는 것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흐뭇했다.

유니폼 차림의 여종업원과 꺼무죽죽한 노숙인의 앙상블. 내가 꼽은 훈훈한 세밑 명장면이다. 여종업원의 표정은 시종 밝았고, 얼어붙은 노숙인의 얼굴은 따스하게 펴져 있었다. 그는 짬뽕 곱빼기를 주문했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었다. 그의 응어리진 마음 밑바닥을 미리 헤아리기라도 했다면 사람들은 저 괴괴한 편견을 갖진 않았을 거다. 그는 냉큼 밥값부터 선불로 냈다. "걱정들 마시라!" 속으로 얼마나 외쳤을까.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가슴 쳤을 것이다.

그랬다. 밥값은 그의 막장 자존심처럼 보였다. 자신을 내팽개친 불신 사회와 단절한 그이기에 그럴 것이다. 불신 세상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랄까. 그는 그러나 운명처럼 다가오는 냉정한 사회적 불신을 선불로써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왜 그가 가슴 죄며 그 무거운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다. 세밑 무렵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왜 '배려'인지를 일깨운다. 사람 사이에 배려가 스며들면 신뢰가 싹튼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이다.

배려가 비단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향한 배려도 있다.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배려한다는 건 모순.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삶을 재촉했다. 자신(self)에게 선물(gift)을 주고 싶다는 이른바 '셀프트(selft)족'이 등장한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물거리는 이 세밑. 자신에게 따뜻한 '격려'를 선물하며 다독여주자. 고단한 긴 그림자를 이끌고 왔을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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